[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Ⅳ-(1)우리사회의 담론 풍경:총론
혼재와 공존, '복합구도'로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2007년 여름,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린 지 오래이건만 우리 사회에서 이제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민주화시대 20년과 이를 결산하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주는 함의 때문인 듯하다. 해방 이후 60여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건국, 산업화, 민주화가 이렇게 한 순환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실존적 거점과 전략적 방향에 대한 질문에 지식 사회는 어떤 응답을 하고 있는가.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 담론의 역사는 민주화 과정에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1980년대가 사회 구성체 논쟁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족해방주의의 분출로 특징지어진다면, 1990년대는 ‘문화의 시대’의 도래와 외환위기의 충격에 대한 대응이 담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 사회 담론의 지형은 이제까지 제출된 이론적 테제와 경험적 분석들이 심화되고 분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주목할 것은 최근 우리 사회 담론의 지형이 좌파 대 우파,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복합 구도를 형성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에는 이념적 구도와 탈이념적 구도가 혼재하며, 서구주의와 비서구주의가 공존한다. 세계주의 대 민족주의, 현대 대 탈현대, 시장주의 대 국가주의,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 개발주의 대 생태주의 등 복합 구도가 현재 우리 인문·사회과학 담론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세계주의 대 민족주의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이끌어온 구도다. 오늘날 세계화가 우리 삶과 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주의 담론은 이중적 속성을 갖는다. 한 편에서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표현되는 보편주의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서구 제도 및 가치를 특권화하는 오리엔탈리즘, 다시 말해 서구중심주의를 내포한다.

민족주의는 세계주의에 맞서는 담론이다. 우리 민족주의 담론은 서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이른바 ‘근대의 발명품’ 이상의 것이며, 무엇보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민족해방주의의 전통을 이어 왔다. 문제는 민족주의에 내재된 집단주의 성향과 과잉 애국주의 경향이다. 이 점에서 ‘민족주의는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예각적이지만 여전히 음미할 만하다.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충돌에서 주목할 것은 동아시아(또는 동북아시아) 담론이다. 민족국가와 세계체제 사이에 존재하는 지역체제로서의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회를 새롭게 이론화하려는 동아시아론은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의 21세기 버전이자,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대항 담론이다. 동아시아론은 우리 안의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현대주의와 전통주의,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모순적 공존과 새로운 화해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 대 탈현대

현대와 탈현대 사이의 논쟁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돌아보면 90년대 초반 문화의 시대와 더불어 촉발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토론만큼 격렬한 논쟁은 없었다. 한편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을 주목해 포스트모던 논의들을 가치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해 왔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 ‘미완의 과제’로서의 현대성을 옹호하려는 흐름과 ‘총체성의 폭력’에 저항하려는 흐름이 팽팽히 맞서 왔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론의 등장은 시기상조였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90년대 중반 외환위기의 충격은 담론의 중심을 문화에서 경제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세계화, 정보사회와 결합된 포스트모던 현상은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영화, 음악, 미술 영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늘려 왔다. 제도는 여전히 현대적 질서 안에 있되, 의식 및 문화는 빠른 속도로 포스트모던화되는 ‘제2의 현대’ 또는 ‘성찰적 현대’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시장주의 대 국가주의
지난 40년간 우리 사회 산업화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은 발전국가론이다. 추격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부각시킨 발전국가론은 시장, 시민사회보다는 국가를 중시하는 이론을 유포시켰다. 전통적 유교 사상과도 잇닿아 있는 국가주의는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민주화의 요구가 분출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에 내재한 ‘민주주의 효과’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담론이기도 했다.

시장주의가 부상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시장주의는 시장에서의 경쟁 메커니즘이 경쟁력 및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합리성을 제고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시대가 무한경쟁의 시대인 한 시장주의는 거부하기 쉽지 않은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시장주의는 결과적으로 공공성을 훼손하고 사회적 연대를 위협하게 되는 자기파괴적 속성을 안고 있다. 오늘날 이런 신자유주의 논리는 기업과 대학은 물론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등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지배집단의 새로운 담론의 정전(正典)으로 자리잡고 있다.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시장의 효율성과 국가의 공공성을 결합하려는 담론이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철학으로 제시된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사회민주주의를 갱신하고자 한 서유럽 ‘제3의 길’의 한국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최근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 서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 시대 점증하는 사회적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하고 훼손된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응답해야 한다.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

개인과 공동체 가운데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가는 오랜 철학적 질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한 우리 내부에는 개인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정체성이 공존한다. 개인주의가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다면, 공동체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상적 지반을 제공해 왔다. 문제는 개인주의든 공동체주의든 과잉에 있다. 개인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 빠지게 되며, 공동체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권위주의가 강화된다.

이른바 ‘공동체 자유주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담론이다. 서구적 자유주의와 동아시아적 공동체주의를 결합한다는 점에서 이 담론은 80년대 이후 서구 신보수주의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담론 역시 문제가 없지 않다. 개인주의를 실현해야 할 영역에 권위주의 통치로 돌아가고 공동체주의를 구현해야 할 영역에 시장적 경쟁을 강제하는 모순적 혼합물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개인적 자율과 사회적 연대를 어떤 생산적인 방식으로 결합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대한 철학적 숙제이자 사회과학적 과제다.

개발주의 대 생태주의

개발주의와 생태주의의 충돌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구도다. 생태주의는 인간과 자연, 사회와 자연간의 새로운 공존을 모색하려는 패러다임이다. 생태주의는 근대 문명에 의한 환경의 의식적, 무의식적 파괴가 현재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우리 사회에서 추진된 압축적 산업화 과정을 돌아볼 때 생태주의의 진단과 경고는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생태 위기를 가져온 개발주의가 여전히 적잖은 국민들에게 친화적이며, 특히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성장주의 내지 물질주의 전략이 다수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주의와 생태주의 사이에 어떤 가교를 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 인문·사회과학은 새로운 모색을 요구 받고 있다.

담론의 탄생을 기대하며

지식사회 담론은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다. 담론의 영역에서 다양한 구도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복합사회 또는 다원사회로 변화돼 왔음을 증거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도 이에 맞서는 다양한 이론과 대안들이 담론의 경쟁 및 투쟁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대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마감하는 현재, 우리 사회는 새로운 사상적·담론적·정책적 거점과 전략을 요구한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 사회 담론들은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성찰적 사유와 상상력을 좀더 발휘해야 한다. 성찰성은 타자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돌아봄으로써 설명력과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미래에 대해 좀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정책은 새로운 비전에서 비롯되며, 새로운 비전은 새로운 담론에서 태어날 수 있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Ⅳ-(2) 동아시아론
'현실에 뒤쳐진 담론' 새 시험대


이정훈|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담론과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갭’

주식 좀 한다는 사람치고 최근 중국 증시의 활황과 관련해서 차이나펀드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골프를 좋아한다면 저렴한 가격의 중국이나 동남아 골프투어 패키지가, 쇼핑에 관심이 많다면 도쿄나 홍콩으로의 쇼핑여행이 괜찮은 여름 휴가의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오늘날 동아시아는 지식인들의 고담준론 속에서보다 평균적 한국인의 일상적 경험 속에 더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본이 축적되고 순환되는 곳이며 그런 의미에서 발전과 성장의 자본주의적 시간이 가장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동아시아를 이 폭발적 변화 속에서 다루는 한 담론은 늘 현실에 뒤처지게 마련이며, 지식은 현실에 대한 스스로의 무능력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담론이 생생한 현실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한 이 주제는 논의성과와는 별도로 쉽사리 도외시되거나 도태될 수 없다. 동아시아 담론의 ‘긴 생명력’과 지지부진한 ‘아웃풋’이 공존할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 담론의 대두와 그 배경

한국의 지식지형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87년 민주화 항쟁 및 ‘북방정책’의 성과로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지식인 사회를 옥죄었던 이념 콤플렉스가 해소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회주의는 우리 앞에 맨 얼굴을 드러내기 무섭게 스스로 간판을 내리게 된다. 레닌의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사태 속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해 왔던 냉전은 종식을 선언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이 새로운 변화에 대해 기존의 비판적 진영이 주목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비판적 지식집단에서 제기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주변의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한국과 한반도의 위상을 다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요청되었다.

‘창비 그룹’과 동아시아 담론의 제기

이 문제를 하나의 화두로서 비판적 지식계에 제시한 것은 ‘창비 그룹’의 지식인들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분단체제와 세계체제’라는 패러다임을 빌려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자 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온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더 큰 틀의 부분적 구성요소에 불과하다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사회주의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좋은 이론적 탈출구이자 역사발전이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후쿠야마식의 역사 허무주의를 반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었다.

그러나 냉전구도의 세계적 해체에도 불구하고 냉전에 기댄 한국사회의 억압적 질서는 여전히 건재했다. 비판적 지식인의 근본 과제를 분단체제의 극복으로 보는 백낙청을 위시한 ‘창비 그룹’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보편성과 한반도 분단현실의 특수성이라는 양자 간의 거리와 차이를 넘어설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 시급했다. ‘동아시아’는 양자를 매개하는 ‘중간수준’의 범주로서 제기되었다.

탈근대적 상상력과 문명적 대안으로서의 동아시아

그러나 이들이 제기한 동아시아론은 ‘과학적 사회주의’와 ‘운동’에 익숙했던 진보적 지식진영의 ‘본류’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동아시아론이 갖는 진보 담론의 자기쇄신이라는 측면은 묻히게 되고, 반응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잡지 ‘상상’은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동아시아를 진지하게 문제 삼았다. 서구 중심적 사유로는 포착될 수 없는 동아시아 고유의 가치관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발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여기서 동아시아론은 근대적 가치에 대한 회의와 그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일종의 ‘탈근대 담론’으로서 다루어진다. 창비의 문제제기에 전제되었던 정치적 성격은 탈각되면서 문화론, 문명론적 접근이 이를 대체하였다. 이러한 이면에는 보수적 입장의 문화 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전통적 가치와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의 상관성

동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의 경제적 성공 원인을 유교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찾는 유교자본주의론은 서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아시아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동아시아 유교 전통의 계승과 현대사회에서의 창조적 활용을 내세우는 ‘신유가(新儒家, New Confucianism)’의 철학 및 윤리관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상체계로서의 신유가 혹은 현실에 대한 설명모델로서의 유교자본주의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그 속에 함축된 보수주의적 현실관이다.

유교자본주의론의 한국적 수용 또한 현실에 대한 보수적 긍정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유석춘은 정경유착과 연고주의 등 유교전통에서 파생된 문화적 토양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의 발전에 장애요소가 되기보다 오히려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에는 어떤 발전이 바람직한가를 따지는 ‘가치의 문제’ 이전에 경제적 성공이라는 ‘사실의 문제’로 논의의 초점을 이동하자는 현실에 대한 보수적 긍정론이 전제되어 있었다.

외환위기와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흥
그러나 이러한 보수주의적 현실긍정론은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거래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높이 평가되었던 ‘아시아적 가치’가 한국경제를 나락에 빠뜨리는 주범으로 일순간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담론 또한 시스템의 총체적 위기상황과 긴밀히 연동된다. 서구의 금융 패권 앞에 동아시아는 공동의 운명에 놓여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아시아통화기금’ 같은 금융협력체 구상도 등장하게 된다.

이같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지역 내부의 연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으며 이는 동아시아 담론이 문화적 공동유산에서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전략적 비전과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한 통합과 더불어 경제의 지역화·블록화 경향의 동시적 진행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도는 동아시아에서의 지역주의의 전진에 걸림돌이 되기보다 촉진제가 되었다.

국가와 기업, 동아시아 담론의 새로운 생산자

외환위기 이후의 동아시아 지역통합론은 국가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 역시 이 문제에 관한 한 국외자일 수 없었다. 특히 지역경제의 성장엔진으로서 중국 경제가 갖는 막강한 파워는 동아시아에 대한 기업의 관심에 촉매제로 작용하였다. 국책연구소와 더불어 대기업 산하의 경제연구소가 동아시아 담론의 새로운 생산주체로 등장하였다. 막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보고서들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국가와 기업의 시각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달해 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 주도하는 공공적 담론영역의 의제는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거버넌스와 무관할 수 없으며, 국민경제에 미치는 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증대되어감에 따라 개별 기업의 문제가 공적 담론장의 중심에 놓이는 일도 빈번하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신세로 갈파한 어느 재벌 그룹 회장의 세칭 샌드위치 위기론은 그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어떤 지식인의 담론보다 강력한 권위와 대중적 파급력을 가진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동아시아 담론이 더 이상 지식인 사회 내부에서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방식으로 생산·유통될 수 없게 된 담론 생태의 변화를 보여준다.

비판적 지식담론으로서 동아시아론의 열린 가능성

동아시아 담론은 유행 담론이 급속이 교체되는 한국 지식사회의 풍토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참여정부의 ‘동북아중심국가론’은 국가적 아젠다로까지 확산된 동아시아 담론의 현주소를 보여준 사례이다. 그렇다면 정작 오늘날 여전히 비판적 입장에 서고자 하는 지식인에게 동아시아 담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책임감 있게 다루어 ‘창비 그룹’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적 시각’(최원식)에 대한 강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식과 사유를 반추하는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백영서)를 제창한다. 국가나 기업의 ‘현실주의적’ 동아시아 담론과 구분되는 지식인 고유의 성찰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지적 행보에는 미묘한 중심이동이 감지된다. 비판적 싱크탱크 집단의 형성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동아시아를 ‘한반도의 미래구상’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국가 및 시장(기업)에 대해 취해온 ‘비판적’ 거리의 소멸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진보 개혁 담론의 위기가 운위되는 오늘, 동아시아라는 화두는 비판적 지식인들로 하여금 현실에의 적극적 개입과 고유의 비판적 입지의 확보라는 어려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밀고 나가는 중요한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향후 이 논의에 세대와 입장을 달리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동아시아 담론이 갖는 현실적 의미가 보다 풍부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해 본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Ⅳ-(3)민족주의
'식민지근대론' 대안은 진보성 강화


신용옥|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 상임이사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체제로 점철되었던 20세기의 국민국가체제가 자본주의의 패권적 ‘세계화’가 가속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진화해 갈 것인가? 신자유주의적인 세기말의 전환을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체제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개발과 생태, 성장과 분배, 동맹과 자주, 경쟁과 연대, 현상 유지와 청산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상충되는 가치들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발본적이다. 또한 구체적인 현실의 인식과 추상적인 지향의 가치가 서로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대안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된 우리 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재인식 문제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서 전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식민지 근대성 문제로 집약되는 양상을 보인다. 근대 민족의 형성과 그 통합 이데올로기로서 근대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 문제는 탈근대주의적 시각에서 제기된 식민지 근대성 인식에서 핵심적 주제였고, 비판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기존 학계의 한국 민족(주의) 인식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대개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으로 집약된 미국의 한국학 연구 경향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편자들은 기존의 민족(주의) 인식이 서구 근대주의의 단선적 발전논리에 제한되어 ‘민족-반민족’의 이분법적 체계를 띠게 되었으며, 두 개의 국가주의와 냉전이라는 정치화된 담론에 제약되어 식민시대와 국민국가시대 간의 인위적인 단절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식민주의·근대성·민족주의 사이의 복합적 관계에 주목하며, 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 식민지 근대성을 제시한다. 이때 식민지 근대성은 근대성의 식민지적 발현에 다름 아닌데, 근대성의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역사적 진보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근대성과 식민주의의 융합·중첩은 계급·성·지역·신분 등 민족 이외의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집합 정체성을 낳는데, 이들 정체성 역시 보편적 범주임이 강조된다. 민족 개념 역시 다른 집합 정체성들과 마찬가지로 경쟁하고 협상하며 재구성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들은 식민지와 탈식민 국가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즉, 식민지 시기 민족주의가 전통을 전유하는 방식, 신채호의 저술에 내포된 민족과 민중 개념 사이의 긴장 등이 80년대 민중 민족주의를 통해 재현되는 양상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자유(개인의 주체화)와 규율이라는 근대성의 이중성 중에서 규율의 성격은 이들 연구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식민성은 형해화되고 식민지를 ‘이식된 근대’의 차원으로 왜소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는 탈근대주의적 역사서술을 자유주의적 역사서술로 등치하는 이 연구의 기본 입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연구는 식민지 이전의 역사적 사실들을 모두 전통으로 환원한 결과 개화파와 갑오개혁기, 독립협회 운동기에 나타났던 민족주의 운동의 담론적 토대를 무시하고 식민주의로 배태된 민족주의만 강조하는 한계를 보인다고 비판받는다.

이와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둘 때, 김진균·정근식의 입론은 인상적이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민중의 대립과 투쟁을 식민지 사회의 기본 틀로 전제하면서, 식민지 민중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간 식민지적 근대에 주목한다. 황국신민은 봉건적 유기체성이 내포된 근대적 규율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 입론의 특징은 근대적 주체 문제를 근대적 규율권력이라는 푸코적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면서, 계급이라는 집단적 주체를 설정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 시민·개인의 형성 문제로 귀착되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넘어서고자 하는 점에 있다.

이처럼 한국학계의 식민지 근대성 논의는 미국 학계의 문제의식을 일정 부분 공유하면서 근대성 비판을 식민성 비판과 결합시키는 특징을 보이지만, 논자에 따라 강조점의 차이도 내포되어 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편자들은 식민지적 근대를 서구적 근대와 다른 근대성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는 김진균·정근식과 달리, 서구와 식민지는 근대 세계체제의 양면으로 동일한 구성요소일 뿐이기 때문에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고 본다. 따라서 식민지는 ‘왜곡된 근대’가 아니다. 편자들은 식민지민들이 정치적인 공공영역을 매개로 저항과 협력의 축을 계급·성·인종·문화 등의 다양한 범주로 확대해 갔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친일을 협력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바꿔 읽기를 제안한다.

편자들 중 윤해동은 원초론과 유기체성을 한국 근대민족주의의 성격으로 평가한다. 3·1운동 후의 공화주의도 국민주권적 공화주의가 아니라 민족주권적 공화주의로 귀결되었으며, 민중 민족주의에서 민중은 합리적 자유주의적인 주체로서가 아니라 민족 구성의 대상으로만 기능해 민주주의적 성격이 발휘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자와 남한의 반체제운동 민족주의 역시 원초론적 민족주의에 구속되었다고 본다.

편자들은 통일민족주의, 시민민족주의, 민중민족주의 등 민족주의의 내포를 조정해 그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보다는 민족주의를 넘어 민족국가를 상대화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될 때, 해방 후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 내포된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국민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해소되는 방식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경제론은 저발전의 정치경제학으로서 개발주의에 다름 아니며, 박정희 정권기 저항엘리트들의 민주주의는 대중의 이해관계를 민족과 국가로 환치시키는 역설을 가져왔다는 점이 강조된다.

미국 학계와 달리 한국 학계의 식민지 근대성 논의는 기존의 비판 담론을 극복·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협력담론에 대한 비판보다는 협력담론 자체가 중심적으로 사고되어, 시민적 공공영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식민사회의 식민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저항담론을 해체하는 역할만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된다. 따라서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의 ‘낡은’ 관점을 극복한다는 이들 문제의식의 발본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어떤 대안적 사회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연구 경향의 최대 과제일 것이다.

생산적 논의를 위해, 탈근대주의적 민족(주의) 인식의 의미를 현대 한국민족주의의 지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재고해 보고자 한다. 이중성을 내장한 근대성 및 민족주의의 보수성을 제어하고 진보성을 강화해 가는 것도 대안적 사회 전망을 열어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민주주의는 핵심 의제로 등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큼이나 열린민족주의, 시민민족주의, 민중민족주의 등 민족주의의 지향도 다양하다.

이 중 민중민족주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족 공동체를 추구한 서구 시민혁명기 민주주의의 인민적 정통인 공화주의와 인민주권설에 맞닿아 있다. 노동자계급이 민족해방과 사회해방의 이중혁명을 수행해야 했던 19세기말 동유럽의 민족주의가 ‘민중-민족’ 개념에 기초해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하며 사회주의적인 진보적 민족국가를 전망했듯이, 식민지를 경험했고 근대 세계체제의 일환인 분단체제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민중민족주의는 대안적인 사회 전망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강만길의 경우처럼, 국민주권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국가주의와 대별시키고 식민지시대 민족주의가 민주사회주의 제도를 지향해 갔던 점을 강조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지향이 형식적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차별과 소외를 평등의 가치로 극복해 가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산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민족주의의 지향이 흡수통일이 아니라 대등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일방에 의한 내부의 식민화를 경계하는 것인 만큼 남북간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며, 이 원칙은 남북 내부의 민주주의에 의해 촉진되고 또 역으로 남북 내부의 민주주의를 촉진할 것이다.

그리고 박현채의 경우처럼, 계급적 프리즘을 통한 민족적인 것의 반영으로서 민중민족주의를 인식하는 것은 ‘민중-민족’ 개념에 기반한 민중 주도성의 관철로 민족주의의 근대적 성격을 완성하는 동시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내포해야 하며 그 속에서 근대의 시민권은 인민의 권리로 지양되어 가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민중 주도로 민족주의의 과제를 완성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이중성을 재현하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극복을 위한 경로로 설정된다. 식민지 근대성은 견고한 개념으로서보다 일종의 문제설정으로 간주될 때 더 생산적일 수 있듯이, 탈근대주의적인 민족주의 비판은 민족주의의 보수성을 제어하고 그 극복을 위한 단초를 열어가는 데 중요한 시야를 확보해 줄 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채호의 말처럼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탈근대주의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민족주의 비판도 제기되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자인 이영훈은 문명사적 관점을 제기하는데 그 요체는 발전의 계기를 외부 문명에서 구하는 것이다. 식민지기는 전통문명과 근대문명이 융합되는 과정이었지만 융합의 성과는 빈약해 내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해방 직후 사회는 비조직적이고 무정형한 야만의 상태였고 외래의 점령군들과 그 협력자들이 야만을 종식시켰다고 본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문명사의 경험에서 정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의였다는 것이다.

민족과 민중 담론을 해체한다는 탈근대주의 본래의 문제의식보다는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논리, 국가주의와 냉전 논리를 답습한 근대주의 변종에 불과하여 ‘국익·성장담론과 탈근대·탈민족 담론의 잘못된 만남’에 불과하다고 비판된다.


[민주화20년, 지식인의 죽음]Ⅳ-(4) 통일론과 평화론
'통일'이 아니라 '소통;이 화두다

김기봉|경기대 교수·사학과

우리에게 통일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은 동어반복일 수 있다. 왜냐하면 누가 우리인가의 범주에 따라 통일 개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종래 우리의 범주를 규정하는 것은 민족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로 여겨졌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남북이 분단된 이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단지 문제는 누구에 의한 통일인가를 둘러싸고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졌다. 남한의 이승만은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그리고 북한 김일성은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통일 개념의 차이는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는 구조가 됐다. 남북한 정부는 겉으로는 통일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통일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했다. 이데올로기 통일이 불가능한 냉전 상황에서 민족통일이란 남북의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유지시키는 구호에 불과했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계급해방을 주창하는 좌파와 민족해방을 목표로 하는 우파 사이의 분열과 대립은 예정되어 있었다. 두 세력이 해방 정국에서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계기는 이른바 반탁과 찬탁의 갈등이다. 반탁이란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신탁통치안’을 반대하는 것을 지칭한다. 반탁운동을 벌인 정치세력은 모스크바 3상 협정을 지지하는 세력을 ‘찬탁운동’ 진영이라 부르고, 그들을 소련의 앞잡이인 ‘매국노’로 규탄했다. 하지만 이들은 민족 자주독립 국가의 건설을 위해 반탁운동을 전개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익과 소련을 적대시하는 것은 합의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이 같은 대립의 연장선상에서 발발했다는 점에서 내전이고 강정구 교수의 주장대로 ‘통일전쟁’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으로 보는 강교수를 공산주의자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탁과 찬탁의 개념으로 통일문제를 인식하는 우익세력이다. 통일이라는 민족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좌익과 우익 사이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서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60년간의 분단체제 하에서 통일은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해소하는 기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키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남한은 북진통일과 멸공통일이라는 구호로, 북한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명칭으로 통일을 독재정권을 옹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함으로써, 통일은 분단극복의 순기능이 아니라 분단고착의 역기능을 담당했다. 통일 개념의 통일이 부재한 상황에서 통일의 구호는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역설을 낳았다.

이 같은 모순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으로 추구됐던 것이 중도노선 또는 합작론이다. 일찍이 해방공간에서 여운형과 김규식은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전선을 시도했다. 이들은 통일 민족국가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친미친소와 좌우합작을 전제로 할 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었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분단체제의 기원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비롯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변지역인 한반도에 동서냉전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조건 속에서 민족통일의 유일한 가능성은 좌우합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도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좌우의 대립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중도파의 입지는 좁아지고, 그들은 회색분자로 낙인찍힘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좌우의 갈등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폭발했고 분단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1950년대 조봉암은 좌우대립의 모순을 지양하는 것을 진보로 규정하는 제3의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분단현실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승공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 이후 반공을 국시로 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는 동안 남한사회 중도의 맥은 끊겼다.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북한체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북한 지도부는 체제 위기를 주체사상과 핵폭탄 제조로 돌파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의 이질화와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민족주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냉전시대 남한사회 민주화 운동은 민족통일 운동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87년 체제’를 경유하면서 남한과 북한 사이의 격차가 극복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벌어짐으로써 목표로 추구했던 통일이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을 서로 다른 사회로 분리해서 사유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백낙청은 여전히 분단체제론을 고수하여 한반도 통일이 현재진행형임을 주장하는 데 반해, 최장집은 사고의 프레임을 남한사회로 한정하여 평화공존을 목표로 설정할 것을 역설한다. 최장집에 따르면, “오늘의 남한사회는 분단시대라는 정의가 함의하듯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반쪽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근대화되고 자족적으로 완성된 사회이자 국가이며,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족통일의 신화가 깨지면서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목표로 수정하여 남한사회의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보려는 관점이 등장했다. 최장집은 오늘의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 문제와 관련하여 바람직한 목표는 해방 직후 좌절됐던 민족주의-통일을 다시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대신에 민주주의-평화공존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공존을 통일에 이르는 수단이나 중간노선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표이자 중요한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낙청이 민족공조, 대미 자주화, 과거사 정리 등 민족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면, 최장집은 남한사회의 양극화 해소와 복지확대라는 사회경제적 문제해결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이 두 지식인 간의 논쟁은 80년대 벌어졌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NL 대 PD’ 논쟁의 21세기적 변형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의 정체성 논쟁을 내포한다. ‘87년 체제’를 경과하면서 명확해진 것은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민족이기에 앞서 서로 다른 국가이고 사회라는 점이다. 좌파로 분류되는 최장집은 남한사회를 주체로 하고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대한민국 국가를 범주로 하여 현실 문제들을 진단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좌파와 우파로 등치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래로 역사와 사회를 독해하는 문법이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후 일어난 현실사회주의 붕괴는 그 문법의 해체를 초래했다. 1980년대 말 세계적으로는 현실사회주의 종말과 함께 하나의 이념에 의거해서 사회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다고 믿는 혁명의 거대담론이 종말을 고하는 탈근대가 도래했지만, 남한사회에서는 6월 항쟁을 통해 혁명의 거대담론이 헤게모니를 잡는 근대의 정점에 도달했다.

1980년대까지는 ‘나는 누구인가’의 아이덴티티를 ‘주체성’으로 파악했다면, 그 이후에는 ‘정체성’으로 인식했다.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된다”는 정체성 인식은 민족을 섹스(sex)와 구별되는 젠더(gender)처럼 인종과 같은 생물학적 범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정치적 개념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상영된 황석영 소설을 영화화한 ‘오래된 정원’은 아버지 오현우와 딸 은결의 만남으로 2007년 우리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그 장면에서 은결은 우리시대 전형적인 신세대이고 오현우는 386세대다. 북한사회는 차치하고 남한사회에서 이 둘 사이의 통일이 가능할까? 이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둘을 하나로 만드는 통일이 아니라 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소통이다.

소설 ‘오래된 정원’은 한윤희 아버지, 오현우 그리고 한윤희라는 세 인물의 인생 역정을 통해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그렸다. 한윤희 아버지와 오현우는 각각 1950년대와 1980년대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좌파지식인의 초상이다. 오현우가 감옥에 있었던 1990년대 한윤희는 독일에서 동구권의 붕괴와 독일통일을 목격한다. 그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은결이 될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교육받은 은결은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의 미래세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현우와 은결의 만남을 통해 한국사회의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함축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통일이 아니라 소통이 화두가 돼야 한다. 남한사회 내에서는 세대와 계급, 지역과 젠더 그리고 앞으로는 점점 더 다인종사회로 변모함에 따라 문화 간의 소통이 문제가 될 것이다. 하나가 되는 통일이 아니라 복수의 관계를 지향하는 소통이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키워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북 대치 상황을 청산할 수 있는 평화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통일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한과 북한 가운데 누가 승자가 되느냐와 상관없이 양쪽 모두는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Ⅳ-(5)‘타자의사유’ 로서 현대철학
자유·민족 넘어 '타자'와의 융합 모색


이정우|철학아카데미 대표

20세기 철학은 시대의 급변에 따라 화두를 달리 해왔다. 19세기 후반 이래 동북아 철학은 서구 철학의 성과를 수용해 왔고, 이 시대를 ‘계몽’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 계몽의 시대는 주로 자유주의 사상을 수용한 시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계몽의 사상들도 두 가지 갈래를 뚜렷이 구분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사상이고, 또 하나는 이 계몽사상의 비판적 성격을 와해시키기 위해 도입한 독일 보수주의 사상들(특히 헤겔) 및 사회진화론(특히 스펜서)이다. 한국은 일제 시대에 본격적으로 현대 철학(주로 서구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아쉽게도 전자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오히려 후자로부터 현대적 사유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몽적 흐름에 대해 두 가지 대립적 사상이 출현했다. 그 하나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들이 도래시킨 자본주의적 현실에 맞서 혁명을 추구한 사회주의적 사상들(특히 마르크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일방적인 서구화에 회의를 느끼면서(특히 한국의 경우 식민지 현실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민족주의적 사상이다.

이렇게 한국 현대 철학은 자유, 혁명, 민족을 세 핵심 화두로 삼아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철학은 다변화되었고, 근대 철학의 몇 가지 갈래에 대한 편협한 연구를 넘어선 서구 철학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론으로서의 비이성주의(실존철학 등), 동북아 고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 그리고 영·미 분석철학의 도입 등 여러 갈래에서의 새로운 경향들이 도래했다.

이와 나란히 정치·철학적으로도 여전히 자유, 혁명, 민족이라는 삼각 구도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를 이끌었던 핵심적인 철학적 동력은 역시 모순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섰던 변증법 철학(특히 헤겔과 마르크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래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고 철학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특히 후기 구조주의의 수용). 이 시대의 철학적 화두를 어떻게 잡을지는 아직 그 자체가 문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철학적 장을 ‘타자의 사유’로 이해하고 있다. 이 ‘타자’를 세 가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윤리학적 타자

타자란 권력 안에 들어 있는 동일자(the Same)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래서 타자란 권력의 중심에서 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the Others), 바깥의 사람들이다.

이런 ‘타자’ 개념의 규정에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로 ‘규정’을 통해 규정하는 방식이 있다. 동일자란 규정하는 존재이고, 타자란 규정되는 존재이다. 여기에서 ‘규정’이란 가치, 의미, 법규, 규범, 제도 등 여러 가지 맥락을 띨 수 있다. 제도의 예를 든다면 동일자는 제도를 규정하고 타자는 그 규정에 의해 규정된다. 그래서 타자는 ‘~이 아닌 존재’라는 부정의 방식으로 규정된다. 광인은 ‘~한 존재’가 아니라 정상인‘이 아닌 존재’로 규정된다. 타자란 자신의 규정이 아니라 타자(동일자)의 규정을 통해서 규정되는 존재이다.

세계사는 동일자와 타자의 투쟁의 역사이다. 이 명제는 87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 그 이전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세계사는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의 역사이다. 그러나 전자의 명제는 후자의 명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자는 후자를 포괄한다. 그래서 포괄적 명제는 이렇게 된다: 세계사는 동일자와 타자의 투쟁의 역사이며, 근대 이후 그 투쟁의 핵심 항들 중 하나는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었다. 87년 이후 ‘구좌파’와 ‘신좌파’의 갈등은 이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오늘날의 타자의 사유는 ‘타자’의 얼굴을 프롤레타리아라는 하나의 얼굴에서 민족, 성, 지역, 연령, 신체 등에 관련되는 매우 다양한 여러 얼굴들로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얼굴들을 배타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 얼굴들은 대개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 배타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또 각 역사적 맥락에서의 우선 순위가 첨예한 문제가 되지만 타자의 문제를 불연속적 병렬의 형태가 아니라 입체적인 얽힘의 형태로 파악해 나가고 실천 역시 입체적으로 얽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긴요한 문제로 존재한다.

인식론적 타자

87년 이래의 한국 사회의 변화는 학문, 이론, 사상, 철학(무엇이라 부르든)에서도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를 담지하는 핵심적인 말은 아마 ‘담론’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용어는 이제 일상어가 되었다.

고전적인 학문/이론에서는 ‘명제’를 추구했다. 명제란 무엇보다 진위 판별이 가능한 문장이며, 감정 등 사적인 차원이 제거된 문장이며, 연역적 논리 구조의 고리를 형성하는 문장이다. 이에 비해서 담론은 이 명제 차원으로부터 비언어의 차원 즉 신체의 차원, 사물들의 차원을 향해 하강하고자 한다. 이로써 신체 차원과 명제 차원 사이의 공간이 담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지, 시뮬라크르, 텍스트를 비롯한 많은 개념이 이런 맥락에서 등장하거나 새롭게 해석되었다.

이런 인식론적 변환을 통해서 학자들, 사상가들의 사유 태도나 글쓰기 양식에서도 큰 변화가 도래했다. 고전적인 방식의 사유나 글쓰기가 변화를 겪게 되고 좀더 생기발랄하고 탈분과적인 방식의 사유/글쓰기가 모색되었다. 지식인들과 사회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왔고, 지식인 개념 자체가 복잡한 분화 과정을 겪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변환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지적 불성실이 사유의 생기발랄함과 혼동되었고, 학문적인 노동의 결여가 자유분방한 글쓰기와 혼동되었고, 자본주의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정당화가 문화의 새로운 조건들에 대한 연구와 혼동되었고, 그 외에 많은 것들이 혼동되었다.

사상의 내용에서도 많은 혼동이 있었다. 세계의 기표화에 저항해서 실재론적 사유를 펼쳤던 사상가들(예컨대 기표화를 넘어 실재적인 것을 드러내려 한 라캉, 사회체제의 근저에서 권력의 활동을 읽어내려 한 푸코, 현실성의 운동 밑에서 생명의 운동을 밝히려 한 들뢰즈 등)을 오히려 리얼리티 개념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들로 (완벽히 거꾸로) 읽어내려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모든 부작용들을 거둬내고 지난 20년간 우리가 배웠던 새로운 사유를 더욱 성숙한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전통 학문(유·불·도)과 근대에 들어와 배웠던 학문, 그리고 최근의 학문 사이에 연계성을 수립하는 것,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고유의 학문을 전개하는 것이다.

존재론적 타자

철학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문제가 된 타자는 존재론적 타자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세상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뀌는 것을 지켜봐 왔다. 좁은 의미에서 역사만이 변한 것이 아니다. ‘사물’ 자체, ‘존재함’의 의미 자체가 거대한 변혁을 거쳤다.

세계는 하나이지만(물론 계속 변해 가는 하나)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여럿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바뀌면 이전의 세계는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간에게는 다른 세계가 된다. 지난 반세기(한국의 경우 지난 20년)는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실질적인 측면에서 ‘세계’라는 개념이 거대한 변환을 겪은 시대이다.

이론적 맥락에서 현대 철학은 복잡계 이론, 프락탈, 급변론, 분자생물학, 진화론, 면역학, 뇌 과학을 비롯한 매우 다양한 과학적 성과와 맞물려 전개되었다. 이런 지적 모험은 우리를 지난 긴 세월 동안 살아왔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다가온 타자의 얼굴을 한 이 새로운 세계를 철학적으로 소화해내는 일은 현대 존재론 초미의 관심사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도 또한 사이버 공간의 도래 로봇·사이보그를 비롯한 생체공학의 등장, 의학에서의 다양한 혁신 등을 비롯한 많은 변화가 도래했다. 우리는 신체에 있어서나 감성, 무의식, 욕망, 지각 체계, 상상 등에 있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휴먼’이 어떤 모양새를 해 나갈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존재론적 카오스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 카오스는 또한 새로운 존재론의 모태이기도 하다.

오늘날 현대 철학의 앞에는 배제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새로운 윤리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 철학함 자체(사유하기, 철학사 읽기, 글쓰기, 대화하기 등등)의 새로운 형태을 창출해내는 것, 새롭게 도래한 ‘세계’와 맞붙어 존재론적으로 고투하는 것을 비롯해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어떤 문제든 그것은 타자의 문제와 얽혀서 논의되리라 본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Ⅳ-(6)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
장벽을 깨고 생산적 소통을 향해


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과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더 이상 문과와 이과의 구별이 공식적으로는 없다.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1학년에 공통 과목을 끝내고 2학년부터는 자신들의 지적 관심사와 졸업 후 진로를 고려해 다양한 선택 과목 중에서 골라 듣게 된다. 그러나 물론 실제적으로는 문과와 이과의 구별은 학생들 사이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학교가 다양한 선택 과목 모두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과거 문과와 이과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선택 과목을 고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을 싫어한다면 덩달아 과학 심화 과목도 더 듣지 않고 주로 사회과학 과목을 더 듣는 식이다. 이런 현상을 볼 때 형식적 제도의 변화만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최근 소개된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사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민사고는 외국 대학 준비반이 따로 있는데 이곳은 외국 대학 입시를 위해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과목을 조합하여 공부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1학년 때는 별 차이가 없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되면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교육 받은 학생과 그런 구별없이 교육 받은 학생들 사이에 아주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세상에 정말로 문과형, 이과형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동료압력, 문화적 동질화 등을 통해 그런 틀에 박힌 인간형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게 키워지다보니 우리 대학생들은 왜 철학수업 시간에 최근 영장류학의 성과를 소개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우리와 근연관계에 있는 영장류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지 경험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상식적인 생각이 그들에게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윤리란 도둑질 안 하고 거짓말 안 하면 되는 것이지 자연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과는 철저하게 무관하거나 주변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박성래·김영식 등이 ‘중인 의식’이라고 이름 붙인 이러한 생각이 널리 퍼지다보면, 과학자들은 현대 과학연구는 수많은 사회적 자원과 지원을 필요로 하며 그 파급 효과도 크기 때문에 연구 설계와 진행 과정 모두에서 윤리적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연구 선진국에서는 널리 공유되고 있는 사회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대체적으로 분류해서 인문사회계열의 지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이공계열의 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차이와 그 차이로 인한 폐해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 일찍이 과학 배경을 가진 영국의 문필가 스노는 ‘두 문화’라는 개념을 통해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들 사이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차이가 그들 사이의 생산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아 결국에는 영국이 산업부문에서 다른 나라에 뒤처지게 되는 피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스노의 주장은 산업부문에서의 영국의 절대 우위가 경쟁국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무너지고 난 이후에 나온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결과에 ‘두 문화’의 폐해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두 문화’ 문제가 유독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폐해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 주제에 대해서는 김용준, 홍성욱 등의 연구가 있다. 실업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경제학이나 환경공학처럼 그 문제와 직결되어 보이는 한 가지 전문분야의 지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여러 측면의 복잡한 쟁점이 얽혀 있는 특징 때문에 이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려면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협력 작업이 필수적이다.

실업은 단순히 일자리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사이의 수적 불일치가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심리적 박탈감에 대한 고려와 적절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학기술정책 등과 연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는 환경오염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일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망에 맞추어 우리 삶의 태도를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 부쩍 관심을 끌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논란거리인 원자력 발전이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중요한 선택은 단순히 발전단가에 대한 산술적 효율성 계산을 넘어선 국민적 수준의 공감대 도출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합의라는 개념 자체가 원자력과 같은 과학기술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절박한 문제의 해결은 원점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잡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현실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할 필요가 있는데 각자의 좁은 전공분야의 시각에 갇힌 전문가들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종종 이러한 ‘학제적’ 논의는 본질적인 논의에 접근하기도 전에 ‘윤리적’이나 ‘합리적’ ‘효율적’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이 분야마다 다르게 정의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문과형 전문가와 이과형 전문가들의 소모적 논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버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이과형 전문가는 특정 정책이 기술적으로 비용절감을 높일 수 있더라도 사회적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되어 결국에는 사회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문과형 전문가들은 관련 과학기술의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보거나 평가하기 전에 손쉽게 권력이나 이해관계에 근거한 분석에만 호소하기 일쑤다. 최근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충돌은 이 같은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상황이 정도는 좀 다르겠지만, 국제적 경쟁에서 문·이과 복합형 인재들을 두루 갖춘 세계 유수의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국내 기업의 기획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기업의 생존이 달린 만큼 이 경우에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생산적 소통에 대한 요구가 훨씬 더 절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생산적 소통에 대해 우리 지식인들은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들은 찾아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 분야에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 학자가 매우 극소수라는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두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의 지적 현실에 비추어볼 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인문학적·사회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예는 부지기수이고 역으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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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먹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입담 과시, 수사학적 달변으로 좌중을 흔들어놓는 것보다 중요한 건 흉중을 드러내는 순간의 감흥이다.[2007.01.23]

이젠 개인적 사회에서 한 명 개인으로 살아가는 게 상식이 되었다(확실히 인터넷은 자주적인 사람들을 위한 네트워크다). 감정은 고요함 속에서 부활한다는 건 워즈워드만의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전문적 능력에만 의지한 채 억지로 인사이더군에 속해버린 나 같은 사람은 외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체중 감량을 원하는 여자가 종일 집에 있으면서 식단을 조절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원하건 아니건 내 일은 다수와 관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혼자의 형식은 직업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군). 그러나 개인들이 서로 얼마나 관계하는지가 삶의 가치를 정의하는 세태에 내 조직 세포의 네트워크들은 서정적이기 짝이 없다. 나는 사막에 있는 것도 아닌데, 실용적 관계에서만은 사회생활을 하는 것 같으면서 실은 안 하고 있으니까.

내 생각에 결합을 이룬 삶은 비효율적이고 창조적이지 않다. 결혼 또한 대부분의 생각과 달리 더 이상 인생을 위한 게 아니다. 섹스는 존재를 증명하는 확립된 방식이 아닌, 하나의 활동 아닌가. 하지만, 모두 일정량의 고독한 시간을 (아니면 침묵으로라도) 필요로 하지만, 금욕적인 남자와 여자들도 그룹을 이루어야 한다는 측은지심 때문에 설립된 유럽의 한 수도원을 보면 누구도 마지막까지 혼자는 싫은 거다. 그들조차 수도원 안에서 천사와 성직자들의 은총과 계율, 영적 본성에 대한 사색에 의해‘결합’되고 있었으니까.

나는 세금을 착실하게 내고, 공중도덕도 끝내주게 잘 지키고, 정리정돈된 연애 때문에 내 어깨에 그 큰 머리를 기대며 씁쓸해하는 사람들에게 곧잘 조언도 하고, 정해진 지역을 크게 일탈하지도 않았고, 재활용도 하며 살았는데, 온순한 시민인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교통체증, 1가구 2주택이었다가 치른 당혹감,일 때문에 바빠서 (세 끼 다 챙겨먹으면서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너무나 불행하다고(돈도 잘 벌면서 불행하면 또 얼마나 불행하다고!) 칭얼대는 사람들뿐이다. 그 소란을 피하자고 백날‘마음의 평화’를 가르치는 책들을 읽으며 침대 위에서 비비적대는 것도, 소설 속에서 내 인생의 그림자를 보며, 나와 그 인물들의 유사성을 낭만적 방식으로 과장하는 것도 이젠 싫다. TV를 켜면 기분이 더 상한다.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돈적으로 힘들어요” “저 먹는 거 진짜 좋아해요”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들을 침처럼 매달고 사는 비정상인들 때문에. 기분 좋은 것 ‘같다’는 건 기분 좋다는 것과 어떻게 다른 거지? 또 누구라고 먹는 게 싫을까? 모든 명사에 과녁 적(的)자만 붙이면 고상해지나? 어떻게 말을 저따구로밖에 못 할까? 곧 방영될 드라마의 여배우가 “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많이 봐주세요”하고 지껄이면 골빈 년,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누군들 열심히 안 하나? 편집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열심히 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다. 민초들이건 이상화된 대단한 집단에서건 내가 발견하고 싶은 언어, 웅변처럼 저항하기 힘든 힘이 실린 언어, 운율과 논리와 관대함이 따뜻하게 섞인 언어를 만나긴 너무나 힘들다. 난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말 신경증 환자가 돼버린 걸까.

입만 열면 뒤죽박죽되는 문법, 거품 같은 얼버무림, 문장 앞머리에서 시작된 주절을 이끌지 못하는 종속절, 청중들이 유아들 뿐인 것 같은 단순한 논박, 머릿속 한 꾸러미를 펼쳐놓는 데 30개면 충분한 단어들은 언어의 모든 신비를 덮는다. 말을 잘한다는 건 만담을 한다는 걸까? 위대한 연설은 곧 역사 아닌가? 토론을 하는 집단적 능력은 어디에 있나? 그러나 입담 과시, 수사학적 달변으로 좌중을 흔들어놓는 것보다 중요한 건 흉중을 드러내는 순간의 감흥이다. 자신을 ‘정말 매력적인 못된 년’이라고 표현한 린제이 로한의 직설화법은 백과사전을 펼친 듯한 링컨 류의 능변가들을 능히 무찌른다.

본디 수사학은 범절 있는 사회의 기본 강령이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 그러나 세상엔 지혜뿐만 아니라 언어의 숭고함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다. 그래서 나는 다시 소년원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워한다. 2월엔 혼자 있을 때 가장 외롭지 않으니까.

Editor in Chief |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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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7가지 언어습관


1. 상습적으로 고민거리를 말하고 다닌다 
주어진 일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난고나에 부딪치게 마련.
누구나 고민은 한다.
하지만 고민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색하지 말라.
고민이 되든 안되든 어차피 당신이 풀어야 할 일이다.
특히 당신이 상습적으로 고민을 풀어놓는 대상이 당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더욱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당신의 잦은 푸념은 결국 내 능력은 이것밖에 안돼!! 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격이되고 만다.

 
2. 모르는 것은 일단 묻고 본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또한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잘 모르는데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무시당할까봐.
쑥스러워서 등의 이유로 넘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더 큰 실수를 부를수 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마음 속에 진정 의문이 있다면 씩씩하게 물어봐야 한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이 사실 확인이 아닌 방법이나 방안에 관한 것이라면 생각도 해 보기전에 일단 묻고보자는 태도가 문제가 있다.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묻기 전에 적어도 당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두 가지 이상 찾아보라. 질문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질문의 절제 역시 당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3. 이유를 밝히지 않고 맞장구를 친다 
왜 좋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서지 않는다면 남의 의견에 함부로 동조하거나 맞장구치지마라.
일이 잘되면 상으로 주어지는 몫은 의견을 낸 자에게만 돌아가지만 반대로 일이 안 풀리면 (당사자 혹은 함께한 팀원으로부터) 변명이나 원망의 대상에 당신마저 포함될수 있다.

 
4. 네!! 라는 답을 듣고도 설득하려 든다

동조와 허락을 받아낸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득하려 들지 마라.
정말 그래도 되는지 그로인해 당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은 없는지 등을 두고.
애써 당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재차 동조를 구하는 것은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심하다는 인상만을 남길 뿐이다.
공감을 얻어야만 안심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5. 죄송해요 라는 말을 남용한다 

죄송합니다. 몰랐네요..라는 말을 자주 쓰는가?
죄송하다는 말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말이다.
일처리 과정에서 만약 정말 당신의 잘못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애매한 말 대신 왜 그런실수가 일어났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황부터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는 죄송하다고 말하지말라.
습관적인 죄송은 배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내가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6.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하는말 그럼..제가 해볼게요~
조직 내에서 가장 끔찍한 상황은 공식화되지 않은 책임을 수행해야 될 때이다.
당신은 모든일을 처리하기 위해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조직역시 당신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 업무 외적인 일에 자주 나선다면 조직은 그걸 당연시하게 된다.

그만큼 당신이 가치를 발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무언가 당신이 그일을 함으로써 당신에게 내적이든 외적이든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만 나서라.
우선 당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분류해보자.
당신이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 당신이 하면 좋지만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당신이 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일이 있을 것이다.
이중 세번째 업무는 머리속에서 지워라.
제일 우선시해야 할것은 당연하게 첫번째 일이다. 바로 이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쓸데없는 일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두번째 업무는 첫번째에 가까우면서 당신에게 이로운 것을 가려서 취사선택하라.

 
7. 부정적 의견을 되묻는다
조직은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 곳이다.
당연히 업무상 의견차가 있을 수 있고. 당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혹은 업무에 대해 확신이 선 상태에서 일을 추진할 경우 태클 세력들에 대해 왜요? 뭐가 잘못됐죠? 하고 되묻지말라.
쓸테없는 감정 노출로 경계심을 살 필요없이 결과로만 말하면 될일이다.

 
백지연의 ‘자기 설득 파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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