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에서 주최한 통일교육 학술세미나(2004.1.15) "통일교육의 내용학적 기초"에서 발표된 논문 입니다.

- 요약 -

북한의 경제와 경제학
-바람직한 북한경제 교육을 위한 시사점-


이 석_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바람직한 북한경제 교육을 위한 두 가지 질문

북한경제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에는 언제나 두 가지 질문이 따라 다닌다. 하나는 북한과 같이 고립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외부에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경제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료와 방법을 사용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올바른 북한경제 교육이란 결국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공하는 교육방법을 말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북한경제 교육과 관련된 이런 기초적인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북한의 경제현실과 경제학 그리고 이에 대한 외부의 연구성과들을 간략히 검토하도록 한다.


북한의 경제현실과 경제학

북한은 1946년 임시정부를 수립한 이래 줄곧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이러한 계획경제는 1970년대 중반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1946-75년간 북한의 공업생산증가율은 연평균 25퍼센트에 달해 같은 기간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신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성장률은 1975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1990년대에는 총산출량 자체가 감소하는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1975-89년간 공업생산증가율이 연평균 7.5퍼센트대로 하락하고, 1992-96년 사이에는 연평균 마이너스 23퍼센트라는 기록적 감소세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경제가 왜 이처럼 ‘성장→둔화→침체’의 추세를 보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사실과 한가지 가설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사실이란 '산출량은 생산요소 투입량의 함수'라는 것이며, 한가지 가설이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침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잠재적 투자재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북한 계획당국의 명령에 의해 빠른 속도로 생산요소 투입량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산출량 또한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 경우에도 생산성의 증가는 미미했고, 그 결과 잠재적 투자재원이 소진될수록 산출량의 증가폭이 둔화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 계획의 비능률로 생산성이 하락하고, 1990년대에는 여기에 생산요소 투입량마저 감소하면서 총산출량이 일시에 격감하는 위기상황이 초래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의 총요소생산성은 1978년 이후 負(-)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음이 관찰되고 있으며, 석유와 같은 경제의 기본적 생산요소 투입량 역시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북한의 경제학은 이러한 경제현실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경제학이 세 가지의 부분이론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경제체제의 발생과 이행을 설명하는 북한식 역사유물론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경제의 운행원리를 설명하는 '주체의 정치경제학'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회주의 경제에서의 정부와 기업, 개인들의 경제행위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사회적 기술공학인 '주체의 경제관리이론'이다. 그런데 이들 경제이론은 사회주의 경제가 ‘생산성의 부단한 증가’와 ‘생산량의 끊임없는 확대’로 인해 ‘소비와 후생이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경제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국가가 계획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기 때문에 특정 산업부문에 자원이 과다/과소 집중됨으로써 낭비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더욱이 국가가 의식적으로 경제적 연관효과가 높은 산업에서부터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산출량이 끊임없이 증대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실제로 지출된 노동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상품실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이 계속 높아짐으로써 부단한 생산성 증가와 사회적 소비의 확대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의 현실은 지속적인 생산성 하락과 생산요소 부족 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인해 극심한 경제위기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물론 어떤 경제이론이든 현실설명에 실패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이론적 발전을 모색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 경제학에는 이런 상식적인 논의를 적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선 북한 경제학은 현실 경제를 그 분석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학이 현실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현실을 반영하는 경제통계의 추세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1960년대 이후 거의 모든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북한에서 경제현실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경제학 논의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북한 경제학은 경제주체의 선택행위/의사결정에 관한 문제 역시 다루지 않는다. 경제학이란 그 구체적 내용이 어떻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자원과 관련된 인간의 의사결정과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북한 경제학은 이러한 경제주체의 의사결정문제를 도외시하는 매우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다. 더욱이 북한 경제학에는 사실상 자원배분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경제에서의 자원배분은 크게 보아 계획경제내의 계획기구, 계획경제내의 非계획기구, 그리고 시장이라는 세 가지 채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북한 경제학은 이러한 자원배분 채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계획경제내의 계획기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북한 경제학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이에 근거해 새로운 경제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북한정부 또는 지도자의 경제정책을 보다 체계화되고 세련된 방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실제로 1967년 이후 간행된 북한의 모든 경제학 저술은 그 논의의 대상과 내용을 김일성의 언급에서부터 찾고 있으며, 그 논의의 목적 또한 김일성의 언급을 정교화 하는 것에 두고 있다. 요컨대, 북한 경제학은 그 방법과 대상, 내용, 의미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실질적인 경제현상과는 무관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경제학이 스스로의 경제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외부세계의 북한경제 연구

앞서와 같은 북한 경제학의 특성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의 경제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외부세계의 연구결과에 의존하는 길 밖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외부 연구자들에 의한 북한경제연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이 시점을 전후해 국제사회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받고 있는데다, 이 과정에서 그간 공개되지 않던 다양한 북한경제정보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등 외부세계의 북한경제 연구기회가 대폭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외부세계의 북한경제연구는 크게 다섯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북한경제에 대한 외부 관찰자들의 사실확인기록(fact finding reports)들이 급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는 1995년 이후 매년 두 차례씩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농업생산과 식량사정에 대해 자체 평가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국제통화기금과 UN개발기구, 미국 의회, EU 및 국제 NGO 등 북한과 관련된 거의 모든 단체와 조직들이 북한경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찰기록들을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로 현대경제이론과 분석기법을 토대로 북한의 경제현상을 직접 분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적 계량기법을 이용해 북한의 식량소비와 총산출량의 관계를 회귀분석하거나, 小國경제의 CGE 모델을 원용하여 북한 경제위기의 원인과 처방전을 검토하는 것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셋째로 현대 경제학에 근거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하는 연구 또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교체제론과 경제발전론적 관점에서 북한경제의 특수성을 해명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나, 북한경제의 제도적 특수성을 기근의 경제학(economics of famine)에 입각해 분석함으로써 식량위기의 성격을 이해하려는 시도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넷째로 북한의 경제사와 ‘경제와 정치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에 산재한 사료들을 집대성해 북한의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 과정을 재구성한다거나, 북한 경제위기의 원인을 이른바 정치논리의 우선성에서 찾으려는 시도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모든 연구들은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발전한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이행 경제학(economics of transition)을 그 주요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북한의 경제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부족‘, '연성예산제약', '(사회주의 경제의) 대리인 문제', '이행의 초기조건' 등과 같은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이행 경제학의 기본개념들이 이용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외부세계의 북한경제연구는 현재 어느 수준에까지 와 있을까?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그간의 연구성과로 인해 북한경제에 대한 두 가지의 기초적 사실, 다시 말해 1)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다’, 2) ‘그러나 북한은 매우 독특한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밖의 모든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지식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보자.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앙계획자가 명령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는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자의 공급부족이 일상화된다는 점이며, 북한 역시 그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북한의 중앙계획자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기피했던 배급제에 기초해 자원을 배분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급부족이 상점 앞에서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북한의 공급부족은 사람들이 자기 집 안에서 조용히 굶주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북한경제연구는 이러한 북한경제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수준에까지는 도달해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성격을 구체적인 수준에서 접목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배급제가 계획경제하의 생산성이나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만일 배급제가 폐지될 경우, 그것이 중앙계획자의 기능을 약화시켜 종국적으로는 계획경제의 해체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계획경제하의 생산성 증대로 연결됨으로써 중앙계획자의 기능을 오히려 강화시켜줄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2년 북한정부가 실시한 소위 ‘7.1조치’를 둘러쌓고 이것이 시장화를 위한 정책인가 아니면 계획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정책인가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모두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바람직한 북한경제 교육의 내용

그럼 이제 앞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이 글의 처음에서 제기했던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기로 하자. 우선 북한경제를 외부에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지 북한경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었던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데이터의 부족이었고, 다른 하나는 설명가설(이론)의 부재였다. 그러나 1995년 이후 북한경제에 대한 관찰자들의 기록이 급증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북한당국의 데이터 또한 외부로 넘어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발전한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이행 경제학, 그리고 舊소련 및 동유럽 경제사에 대한 연구성과들은 북한경제에 대한 가설적 설명이론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 데이터와 설명가설들의 등장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북한경제에 대한 연구수준을 그렇게 비관할 이유만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북한경제에 대한 바람직한 교육내용이란 과연 어떤 것이 되어야만 할까? 이러한 질문에 일의적인 대답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체계적인 북한경제 교육이라면 다음의 몇 가지 내용만은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사회주의 경제 일반의 운영원리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계획기구의 조직과 구성, 경제주체들의 역할분담과 상호작용 및 의사결정과정, 투자와 성장, 소비와 분배, 경제발전의 유형과 특징 등이 그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舊소련과 동유럽을 대상으로 발전한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경제사 연구들이 구체적인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경제는 특수한 사회주의 경제라는 사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後進的 小國경제로 출발했으며, 한국, 미국 등을 대상으로 항상적인 전쟁준비 상태를 유지해 왔고, 국가 자주권의 확보가 그 어떤 사회적 목표 보다도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운영되었다. 이로 인해 배급제의 실시, 경직적, 통제적 계획기구의 형성, 일체의 (미세)경제행위에 대한 국가통제, 자립경제의 구축, 군수산업에의 과도한 경사 등의 문제가 나타났으며, 다른 많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험했던 시장의 존재와 역할, 계획기구의 유연화, 경제적 인센티브의 강조, 분권적 경제운영 등과 같은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북한경제의 특수성을 교육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 경제사에 대한 객관적 연구성과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실정이므로 그에 대한 한가지 대안으로서 북한의 공식적 경제사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경제는 전환기 또는 이행기에 처한 사회주의 경제라는 사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의 변화는 체제내부에서의 전환(transformation)과 체제밖 시장경제로의 이행(transition)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현재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체제내부의 전환인지, 체제 자체의 이행인지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북한경제의 변화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 체제전환의 경우에는 과거 소련과 동유럽의 경제개혁 시기에 대한 경제사적 연구들이, 그리고 체제이행의 경우에는 1980년대 이후의 이행 경제학이 각각 북한을 설명하는 좋은 설명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경제와 한국경제의 통합 가능성에 관해서도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 정립된 이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교육내용은 현재로서는 실험적 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Posted by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