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동아시아론’ 전문가 3인 토론
"한국이 '소통의 연결고리' 되게"
동아시아 담론의 갈래
이정훈=먼저 동아시아 담론의 갈래를 잠깐 짚고 넘어가죠.
류준필= 우선 현안과 관련된 사회과학 쪽의 다자간 협력과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국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등 경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죠. 환경, 노동 문제를 다룬 것도 있고요. 좀 다른 맥락에서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성격의 담론도 있죠.
이욱연= 왜 동아시아여야 되는가, 동아시아 담론이 우리 삶과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논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죠. 이제는 동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우리를 규정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더 진척시키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어요.
이정훈= 문화나 현실 차원에서는 이미 동아시아 삼국을 넘나들며 상호 보충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식인 담론이라는 측면은 좀 약하지 않나요.
류준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라는 것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중국이나 동아시아를 중요한 거점이나 상상력, 혹은 인재 개발의 대상으로 여겼던 세력들의 현저한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죠. 오히려 지금 한국 사회는 반(反)동아시아 담론적인 것이 지배화되고 있지 않나 해요. 현 정권 초기에 동북아시대위원회 등에서 나온 동북아 정책 비전이라고 하는 전략 자체가 실질적 위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중국을 통한 미국 중심의 지배 질서에 대한 재조정 내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의 여지가 작용했지만 근래 들어 중국위협론 쪽으로 정리된 게 아닌가 해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샌드위치론’도 한몫 했고요.
이욱연= 동아시아를 축으로 해서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발상은 한국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 돌파구를 어떻게 찾느냐 할 때 나온 구상이죠. 비판적 지역주의 쪽에서는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냉전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를 뒤흔들어 놓는 균열을 내는 길이라고 얘기해요. 문제는 한국에선 그렇다 해도 중국이나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인식도 굉장히 다르고 한국에서 정서적으로 갖고 있는 미국 중심의 냉전 구조를 넘지 못하는 한계도 있죠.
동아시아와 미국, 북한
이정훈= 동아시아를 논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미국이죠. 미국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 위해 반드시 건드려야 할 부분은 북한문제고요.
류준필= 북한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때 그 문제가 넓은 의미에서는 동아시아적 차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역시 남북관계인데, 여기에 북한은 미국과의 1 대 1 대화를 더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이탈하는 일이 일어나죠. 그런 면에서 남북 분단 자체가 동아시아론을 낳은 것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단은 동아시아 담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역설적인 양면을 가진 게 아닌가 해요.
이욱연= 미국이 동아시아에 부재하면서도 편재한다면 북한의 경우에는 편재하면서도 부재하는 형태죠. 미국이 북한과 화해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미국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 같아요. 미국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것으로서의 동아시아 담론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담론에서 미국을 빼놓고는 어떤 일도 어렵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미국에 제몫 찾아주기죠. 그런 큰 줄기 하에서 6자회담이나 북·미 관계도 결국 동아시아 협력 틀 안에서 나름대로 소화될 것입니다.
현실을 못 따라가는 담론
이정훈= 한 포털사이트에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사람들이 그곳 체험을 전하는 코너가 있어요. 한 중국인 학생이 “한국은 중국의 역사적 속국이었다”고 글을 올리니까 댓글들이 잇따라 붙었는데 주류는 그 입장에 동조했지만 반대하는 반응들도 일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지식인들의 담론 속에는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아요.
이욱연= 동아시아론이 한국에서 부각된 것이 한국 현실을 변혁하고, 동아시아를 동시에 사고하자는 데서 나왔죠. 이게 여러 갈래로 나눠지면서 동아시아론이 상당히 위축된 측면이 있어요. 동아시아 담론의 힘과 의미를 구체적인 일상의 실천 속에서 전개시키지 못했던 거죠. 사실 한국인들은 동아시아 담론의 원조로서 담론을 수출하는 데 바빴지, 그들이 동아시아를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보는 덴 게을렀죠.
류준필= 동아시아 담론만의 문제는 아닌데 담론과 현상은 시간 차가 날 수밖에 없어요. 다만 동아시아론이 다른 것보다 어려운 것은 사회과학적인 수치화가 가능하다거나, 국가기구에 대한 데이터로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인문학적인 추상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죠. 단적으로 일본, 중국에 관심을 가질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 습득의 비용이에요. 이 노력이 시민사회에서 10년간 진행된다 해도, 그 효과를 1년 동안 국가 기구라거나 자본이라거나 금방 전유해서 가져가기에는 느슨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는 거죠.
이욱연= 유교 자본주의론, 동아시아 가치를 내세우고 서구문명의 대안으로서의 동양 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잘 되는 것 같아요. 문제는 비판적 지역주의 담론으로 가면 어려워지고 있어요. 동아시아 현실을 변혁하는 탈냉전 탈식민 작업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담론뿐만 아니라 자국 현실, 동아시아 현실을 구체적으로 변혁하는 일이고 결국 세계체제에 균열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죠.
류준필= 동아시아는 어쩌면 태생적인 동아시아를 내건 이상 짊어져야 되는 한계 같은 것이 있는지 모릅니다. 동아시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현실적인 장애물이죠.
민족주의와 동아시아론
이정훈= 주변국과의 영토, 과거사 갈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동아시아론이 무기력하게 뒤로 물러서 있는 상황도 있는 듯합니다.
류준필= 우리가 일본을 향해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은 그 사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기 때문에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이게 사회 전체의 기제로서 활용하기가 아주 쉬워요. 잊을 만하면 일본에서 누군가 고위관료가 한 번씩 말을 해주면 신문 1면의 톱이 될 거라는 거죠.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우리는 일단 쟤들이 내 건데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고 하는 게 핵심이 되잖아요. 대중 일반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금방 합의에 도달되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욱연= 동북공정 문제는 단순히 역사 분쟁이기보다 우리가 갖고 있던 심리적인 위계질서로서 중국을 상상했던 것이 뒤흔들린 거죠. 동아시아론이 그것을 혁파시키고 동아시아적인 상상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까지 동아시아 담론이 이론적으로 큰 역할을 못했죠. 이걸 못하면 동아시아 담론은 이론적인 수준에만 멈추고 다분히 경제공동체 위주로 가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론 자체가 한국적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한국 중심주의로 가려고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정훈= 이질적인 것의 조화로운 공존, ‘화이부동’ 같은 논리가 동아시아를 다시 생각하는 데 중요한 배경인가요.
류준필= 저는 화이부동 논의가 가진 함정이 있다고 봅니다. 차이라고 할 때는 보통 질의 차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또 형태는 같다는 것을 은연 중에 또 전제하게 되고. 저는 이 부분까지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규모 작음 자체가 동아시아 3국의 상호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중요한 한 요소일 수 있어요.
이욱연= 중국 애들은 천하 질서를 놓고 사고하잖아요. 이건 스케일이 다른 거죠. 그 사람들이 훨씬 더 좋은 생각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를 사고하는 층차가 다른 거죠. 우리는 천하를 사고할 필요가 없는데, 여기다가 중국의 천하에 대한 사고를 우리 쪽에 소개하면서 이것은 중화 패권주의 일변도의 사고라고 해버리면 더 이상 이론을 갖고 중국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져 버리는거죠.
소통의 매개자로서의 정체성
이정훈=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역할을 말할 때 정치·경제와 군사력을 중심으로 세계로 확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다른 방식으로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이 민족성을 활용할 수 없을까요.
이욱연= 한국이 무슨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연결의 고리가 되고 그 다음에 자유롭게 소통하는 매개가 되는 역할이 돼야겠죠. 어떻게 보면 무정체성이 정체성이고, 그것 자체가 고유한 특성이 되는 이런 국가적인 정체성을 고민하는데, 동아시아론이 한 자극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정훈= TV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를 보면 출연자들이 굉장히 글로벌하고, 그 사람들의 반응도 어떤 그런 종류의 위계 없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이제는 들어와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승인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추석, 설날 특집 수준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안착했다는 것에 주목해요.
류준필= 한국이 우크라이나 같은 데서 축구를 하면 교민들이 꼭 수백 명은 와있죠. 우리 상상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가 있어요. 나가 있는 우리 애들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이질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어찌 보면 소수자로서 크는 교육을 받는데 저는 이 교육의 장 안에 한국이 적극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국인만 모이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이질적 국적,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모이는 곳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그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으로요. 그런 감각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올 때, 이주노동자 문제뿐 아니라 한국에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오는 것에 관한 전혀 다른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세대 간 전수가 일어날 수 있어요.
이욱연= 우리 스스로 밖의 것들을 끌어와서 우리의 단일한 조성들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민족주의 논쟁’ 전문가 3인 토론
제목이없어졌음
‘근대국가 만들기’와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며 한국 지식인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이는 ‘해방전후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과 관련해 최근까지도 많은 논쟁을 낳았다. 지난해 뉴라이트 열풍 속에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발간에 참여했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와 탈근대 역사해석을 주도하며 ‘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펴낸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한국사)가 23일 경향신문사에서 이 문제를 논했다. 사회는 신용옥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상임이사가 맡았다.
신용옥=비판론의 관점에서 기존 학계의 민족 및 민족주의 인식의 공과를 어떻게 봅니까.
윤해동=근대 이행기에 민족주의는 자유, 평등이라는 기본권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민족주의적 해석은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았습니다. 민족주의는 과도한 대립 도식을 상정하고, 내부적 억압성 같은 게 있죠. 외부적으로도 과거에 대해 대립적 측면을 내세워 역사 해석에 지나친 단순화를 초래했고요. 민족주의만 내세워 20세기 역사 전체를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많아요.
김일영=해방 후 역사 연구와 관련, 식민사관이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해요. 문제는 정치적·운동적 목적에서 민족(주의)을 강조하는 것과 학문 연구에서 그것을 유일한 가치기준으로 강조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거죠. 또한 우리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민족주의라는 집합 담론 속에 그냥 개인이 실종돼버렸죠. 거기에는 민족주의가 지대한 역할을 했어요. 추구할 가치에는 민족 외에 민주, 민중, 개인 등 다양할 수 있는 거죠.
윤해동=식민지 시기나 해방 이후 역사를 민족주의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해석할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습니다. 아주 다양한 가치들이나 인간의 삶이 있는데, 그것을 민족주의 속으로 포섭해 해석하거나 그렇지 않고 배제해 버리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영역이 많이 생깁니다.
신용옥=‘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명제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식민지 근대화론, 개발-수탈론 등 기존 문제의식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죠.
윤해동=식민지 근대론은 식민지와 근대를 분리하는 사고에 입각해 있어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서구의 자본주의적 양상 등을 근대화의 지표로 해서 식민지 현실을 설명하려 했으며, 수탈론 역시 식민지 현실이 이에 미달한다는 식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이것은 식민지 자체가 근대의 고유한 현상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는 특수한 양상이 아니라 근대의 보편적 양상 중 하나입니다. 해방 이후 사회 역시 상당히 식민지성을 갖고 있습니다.
김일영=저는 수탈론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의하는 의견 표명을 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정치사 전공자 입장에서 해방 이전과 이후 사이는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일제 시대에 깔아놓은 철도나 항만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이 아니라 개발에 대한 사람들의 마인드가 그때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그렇죠.
신용옥=김선생님은 민족주의 비판론에 동의하시는 듯 한데요, 하지만 선생님을 국가주의라고 비판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김일영=‘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민족을 너무 강조한 반면, ‘재인식’은 국가를 너무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재인식’에 실린 것 중 국가형성 과정을 연구한 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국가주의와 구별돼야 합니다. 서구의 스테이트 빌딩을 연구한 찰스 틸리를 국가주의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근대를 거부하건 수용하건 근대의 중요한 양상 중 하나가 생활과 사고의 단위가 국민국가이기 때문에 국민국가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거죠.
국가주의라고 비판하기 위해선 그 연구자의 세계관 속에 국가와 민족과 사회, 개인이 하나이고, 개인은 오로지 국가에 봉사할 때만 의미 있다는 식의 국가유기체론적인 사고가 담겨 있음을 증명해야죠. ‘재인식’에 글 쓴 분들 중 논문이나 공석에서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은 없어요.
신용옥=박정희 정권의 발전국가론을 국가주의적 입장으로 보는 견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일영=그것도 오해인데요. 발전국가론은 국가가 경제에 깊이 개입해 경제발전을 견인한다는 국가개입주의지 국가유기체론적 국가주의는 아닙니다. 만약 국가개입주의를 국가주의라고 한다면 박정희 시대의 진보 진영도 국가주의적이죠. 박정희나 정권 담당자들은 발전을 위해 국가가 개입해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반대편의 민주화 진영은 국가가 개입해 분배를 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윤해동=제가 ‘재인식’에 대해 ‘국가주의’라고 표현한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이영훈 선생님의 글 등 몇 군데에서 ‘대한민국 중심주의’의 혐의가 있어서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순화가 있었던 듯 합니다.
신용옥=식민지 시기 민족 이외의 다양한 집합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민족은 어떤 위치이며, 앞으로 민족과 다른 집합 정체성들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나요.
윤해동=민족주의가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지식적으로는 상대화시키면서 네이션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요. 한국사회만 봐도 문화 다양성, 인종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어서 민족지상주의적 가치를 내세워 사회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저는 친일 민족반역자 진상조사 청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요. 그 법안 첫머리에 ‘민족 정기를 회복한다’와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가 같이 나와요. 이 두 가치는 굉장히 충돌하죠. 지금 한국사회에서 민족정기를 회복한다고 하면, 인종적 문화적으로 정체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들어와 살아야 되고, 또 기여하는 사람들은 다 빼놓고 정기를 회복하겠다는 거죠.
신용옥=결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취하고 그 경로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윤해동=지금까지 변혁 주체를 설정할 때 민족, 민중과 같은 집합적 주체를 설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김선생님처럼 거대담론의 억압성을 강조하며 개인 주체의 형성이 더 필요한 게 아니냐는 자유주의적 담론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과연 자율적 개인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성립될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신 저는 공통의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공공적 가치라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가령 식민지 시기에 최종적으로 독립이나 민족해방이란 문제를 갖고 식민지 국가와 대결할 수 없는 그런 식민지인들이 심을 수 있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공공적 가치입니다. 그런 집단적 의사 표시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었지만 그게 독립운동으로까지 취급되지는 않고 있죠. 저는 그것이 사회의 중요한 주체 형성의 과정일 수 있다고 봅니다. 집합적 주체냐 개인 주체냐 문제보다 거꾸로 공동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왔느냐는 것을 중심으로 보자는 거죠.
김일영=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차이점뿐 아니라 공통점도 많은 것 같아요. 집단주의적 사고를 하는 거죠. 한쪽은 집단의 내용이 국가고, 또 다른 쪽은 민족이죠. 민주화 이후 국가주의적 사고는 극복하기 쉬웠던 반면 민족지상주의자들의 생각은 쉽게 극복이 안됩니다. 집단주의적 사고를 극복하려면 민주주의로만 되는 게 아니라 자유주의를 강조해야 합니다.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도 미완이지만 그 못지 않게 자유주의도 미완의 프로젝트입니다.
윤해동=산업화·민주화 세력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저는 오히려 산업주의, 성장주의의 측면을 꼽고 싶습니다. 분배 이야기가 많이 들리기도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참여하는 민주화 인사들이 과연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단계적으로 향상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그렇게 단계적으로 딱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직 심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것 아닌가요. 의회제도나 정당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것이 큰 장애가 되는 것 같아요.
신용옥=민족국가 건설론과 관련된 해방 후 우리 사회의 과제를 좀더 얘기해보죠.
윤해동=일제 때부터 해방 후까지 민족국가 건설은 지상 과제로 돼 있는데, 이것으로 식민지나 해방 이후를 다 설명하려고 하는 발상은 국가 중심적 사고입니다. ‘스테이트 메이킹’에 과도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면 그 뒤에 전쟁도 마찬가지로 정당화합니다. 50년대 이승만 정권에서 했던 ‘스테이트 빌딩’의 측면과 50년대 북한이 했던 것이 비슷했죠.
김일영=해방 이후 한반도 정세는 미·소나 좌우의 협력이 점점 멀어져 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사항 내용 자체가 이용함직하다고 그 자체를 이상화해서 ‘우리가 이것을 했어야 하는데’라며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신용옥=우리 내부의 직접적인 해방 역량으로 해방을 성취했다면 해방 후 내외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훨씬 더 자율적이지 않았겠느냐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제시대의 해방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럴 때 해방 주체를 설정할 수밖에 없고, 어떤 운동들을 해왔으며 그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보는지요.
윤해동=민족주의는 평화와 별로 친연성이 없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민족이라고 하는 가치를 우선하며 통일을 지상과제로 둘 때,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앞으로도 민족주의를 통일이라는 목표와 과도하게 연결시켜서는 안된다고 봐요.
김일영=보수와 진보 사이에 역전이 일어났고, 그 역전 과정에서 진보세력 안에서도 분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70년대만 해도 진보진영에서는 통일되지 않고는 민주화도, 경제발전도 어렵다며 민족지상주의를 얘기한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에 흡수통일될 것을 우려해 ‘선건설 후통일’을 얘기했죠. 90년대 이후 남북관계가 역전되니까 이제는 북한이 통일에 대해 장기적인 태도를 취했죠. 남한의 진보진영도 일부를 빼고는 통일에서 평화, 공존 쪽으로 옮겨갔어요. 거꾸로 극보수인 사람들은 흡수통일하자고 난리예요. 통일론, 민족주의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는 뜻이죠. 민족주의는 보수 중에도 상당히 오른쪽 사람들의 소유가 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일부 진보진영은 여전히 그 담론을 붙잡고 있고, 보수 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만 나오면 공연히 기가 죽어요. 양쪽 다 한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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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