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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일본 근대화의 풍경
  2. 2009.08.02 서울, 서울, 서울
도쿄 이야기
E. 사이덴스티커, 이산, 1997


근대화 시기-에도에서 메이지로 넘어가고, 그 다음 천황으로 이어지는 시기, 정확히는 간토 대지진 이후부터-를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 경제나 정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거 반해 사이덴스티커? 는 도시공간과 그 내부 조직, 문화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에도 시기까지 도쿄는 야마노테와 시타마치라는 두 지역으로 나뉜다
야마노테-현재의 동쪽 지역은 사무라이와 고위계급들이 살던 곳이고, 시타마치-현재의 서쪽 지역, 긴자와 니혼바시 포함해-는 초닌이라고 하는 하위무사가 살던 곳이다
그러나 근대화는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이어졌는데, 핵심적으로는 개항지인 요코하마가 니혼바시와 연결되는 큰 길을 통해 서구의 문물을 들여왔기 때문
이에 따라서 긴자에 큰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지금도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인 니혼바시는 그때부터 그랬다
-최근에 보이는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 같은 것은 아주 나중에 개발된 곳들
-'긴자 산책'이 당대의 주요 데이트 코스 같은 거였다고, 지금도 긴자 부근에서 잘 살펴보면 일본식와 서구식이 섞인 오래된 건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공간적 변화는 상당히 축적되었으나, 간토 대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 남은 것은 별로 없다고
지금 시타마치가 남아 있는 지역은 야나센 정도? 사실 여기는 예전엔 시타마치도 아니었다지만
미나미센주 지역에도 공창-일본은 공창을 허용했다! 놀라움- 의 흔적과 70년대를 풍미했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공장이 좀 있다 -이건 책이 아니라 나중에 들은 얘기

사이덴스티커는 약간 탐미주의적으로 보이는 가후의 수필을 자주 이용하는데, 당시 시타마치의 풍경에는 가끔 만화에 등장하는
-저녁 무렵의 밥짓는 연기
-상업화 되기 이전의 가부키와 만담 등이 나온다

그러한 약간의 공동체적,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풍경은 지금 우리가 그렇듯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관심사가 들어섰는데
-긴자 산책과 주변의 서구식 건물
-서양의 곡예단과 마술 쇼-이건 천황도 관람했다고
-에도 시기 특정 여성들의 범죄와 수난사 등
-공원과 광장, 특히 여기서는 우에노가 자주 나옴 위치상 그랬기 때문일까? 지금과 달리 초기의 우에노와 아사쿠사 등은 매우 활력있는 동네였다고


요즘의 서울을 생각하면, 과거의 흔적이 조금씩이나마 남아 있고, 또한 해석된다는 점은 부러운 점
도시의 성장에 대한 얘기는 흥미롭고, 또 언젠가 도전하고픈 주제다
Posted by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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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전우용, 돌베개, 2008


인구 1천만을 훌쩍 넘는, 가공할 정도로 남한 전체의 자원과 인재를 빨아당기는 도시 서울에 대한 보고서
고대부터 '신시'로 숭상받았던 서울부터
정도전이 성리학의 질서를 구현하여 직선축을 만들어낸 과정을 넘어 -이후 고종 시기를 거쳐 이 축은 상실된다
고종이 '제국'으로서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시기를 포함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룬 글이다


대한제국 시기의 근대화와 일제의 강요된 근대화를 포함해 다루고 있는데
대한제구 시기의 도시계획(?)이 일제에 대한 항거와 자주적인 국가의 수립을 위해서, 또한 민초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 사용한 상징들은 매우 흥미롭다
-고종의 명성황후 능행 축에 놓은 전차를 통해 왕의 권위와 근대화를 상징하려 한 시도랄지
-도시공원을 조성해 -이후 만민공동회가 열린 곳- 민의를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려 한 것이랄지

다른 한 축으로는 (이식되지 않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경제권력이 상인으로 이동되는 과정
-시장 상인들이 애초에는 군인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시전권력을 도맡았다가, 지방상인들의 성장으로 난전이 활성화된 점이랄지
-통신, 우정국, 파리국 등 국사책에서만 본 <통리아문>의 실제정책은 국가주도적 경제개혁의 하나로 볼 수 있을 듯도 하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도시계획이든 각종 새로움의 도입은 상징체계 내에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물론 그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다르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 5년간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근대화를 이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자발적인, 혹은 국가주도형 근대화는 느리지만 쉼없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일제에 의해서 재조정되는 과정을 띄고 있는 것이 보다 정확할 듯

인구 1천만의 도시 서울의 팽창과 발전, 그 내부의 각종 장치들 -경희궁과 경복궁, 종묘공원, 지하철 1호선 등- 을 도입하며 의도했던 사람들의(권력자의) 의도와 상징은
무지막지한 개발을 통해서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도시 곳곳을 거닐면서 확인해볼 만할 듯

살아숨쉬는 국사교육의 텍스트가 될 법할 듯하다
역시, 역사는 현장에 살아숨쉬고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그 역사는 상징을 통해 특정한 맥락에서 강조되기도 하지만
Posted by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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