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한국경제신문, 2018

연암 박지원에 주목해 고전평론가로 자리잡은 고미숙의 책
'중년 백수'인 고미숙은 감이당이라는 곳에서 청년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유쾌하게 산단다

고미숙은 꽤나 오래 전에 떴지만, 글을 본 것은 처음이다
글투가 단정하리라 생각했는데, 곳곳에 느낌표가 함께 하는 발랄한 글투였고 
의도적으로 명랑과 유쾌를 가장하는 듯도 하다


쟁쟁한 노론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를 치러 조정에서 활약하는 대신 혼자 공부와 유랑을 택했던 연암의 생애에 빗대 청년들에게 고하는 글 정도가 되겠다
무려 조선시대에
직접 고추장을 담가 자식들에게 전해 줄 정도로 생활을 꾸려 나갔던 사람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꼼꼼한 관찰과 기록에 근거한 열하일기를 저술한 것도 존경할 지점이겠으나
친구와의 사귐에 게으르지 않았고 
생활을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돈과 소비, 명예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다 


그리하여 도출되는 선동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여 자신의 삶을 옮매는 대신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을 갖추고 본인이 기꺼이 할 만한 일을 찾자는 것이다 
-쉐어링을 통해 살 곳을 마련하면 고미숙이 몸담고 있는 학문공동체 기준으로 88만원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학문공동체에 속해 있는 듯한 '비자발적(아마도 건강 상 문제일듯)' '자발적' 중년백수를 비롯한 청년들이 실제 실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의도적 선택으로 백수가 되고 세대를 넘나들며 통찰력을 나누고 배우는 일은 매력적이다
삶이 안정된 경로를 마련하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하며,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적절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청춘에게 보내는 하나의 지침으로 본인을 찾아라, 는 비현실적 충고일 수 있다
본인을 찾는 연습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방황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장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또 당장 화폐를 벗어나 본인의 삶을 꾸려내고, 또 무언가를 하면서 즐거워하라는 것이 그러하다


관계를 통한 배움이 본인을 성장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세를 벗어나는 본인의 고집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인양 낙관하고 공유경제와 친구, 관계에의 낙관, 책과 사람이 주는 배움에 대한 낙관이 짙은 느낌이다 

여전히 류은숙의 지적처럼 비슷한 갈망을 지닌 사람들이 맺는 관계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더 큰 배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이 내가 아니도록, 반백수로 살고 싶고, 정규직이 아닌 미니잡을 찾아 게으르게 살고 싶지만, 과연 녹록치 않은 일임을 막 직면한 탓에
탈주와 유쾌, 자기표현이 자신을 떠미는 또 하나의 짐이 되는 탓에 더 외로 꼬아 읽게 될 수도 있다

Posted by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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