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19 [펌]김종인 전성인의 한국경제論

 '레이건혁명'의 종말, 그 이후는?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1>세계경제(상)


 "위기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해결은 각 나라가 해야 한다."(김종인 전 의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3일 한국경제가 올해 -4% 경제성장을 할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6.9%를 기록한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하게 될 전망이다. 수치로 봐도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더욱이 '위기 극복은 각 나라가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엄중한 현실이다. 97년 외환위기 등 과거의 위기는 운 좋게 세계 경제 호황과 맞물려 넘어갔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처방을 써야할지,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만이 옳다며 비판적 의견은 무조건 억누르고 외면하고 있고,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 바로 이 때문에 '-4%'라는 숫자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위기 심화 단계에 진입한 2009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조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김종인 전 의원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실력 모두 견고함을 인정 받는 원로와 소장학자다. 두 사람의 4회에 걸친 대담을 8차례로 나눠 연재한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1일, 김종인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현 글로벌 경제위기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레이건 혁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욕구를 무한정 허용해준 영미식 금융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인 전 의원은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가 화근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적인 실물경기 침체가 아니라 금융위기와 맞물린 경기 침체는 회복에 3-4배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금년 하반기에도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 인사들의 기대와 달리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가 쉽게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잖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링컨을, 경제정책에 있어 루스벨트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오바마는 붕괴된 중산층 복원에 나서고, 전국민 의료보험제 도입 등 복지체제도 보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불행히도 오바마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향후 세계경제 전망을 두 번에 나눠 게재한다.
 
전성인 : 오늘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세계경제 흐름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우선 미국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얘기하고 싶은데 현재 진행 중인 경제 위기와 또 하나는 새롭게 출범한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입니다.

두 번째는 최근 중국경제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경제의 경착륙은 한국의 수출 문제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 문제가 한국 경제 최대 현안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유럽 경제에 대해 짚어봤으면 합니다.

우선 IMF가 최근 2009년 세계경제전망을 냈는데 처음에는 2%대로 발표했다가 최근에는 0.5%대까지 수정했습니다.

김종인 : 유엔은 마이너스 성장을 얘기합니다.

전성인 : 세계경제 침체는 확실한 사실이고 그중에서도 미국경제 침체가 핵심적입니다. 작년에 전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요, 전체적인 영미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도 있고, 그게 아니라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종인 : 이번 사태의 원인부터 짚어보자면, 사실 80년대 초부터 시작한 레이거노믹스의 여파가 오늘날까지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를 위해 좋은 것처럼 생각됐는데, 결국 이기심이 무절제한 탐욕으로 표출 됐습니다. 그런 식으로 가면 자본주의 체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고 있습니다.

전성인 : 고전적인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로운 상태가 달성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논리는 성립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순수한 계획경제도 순수 자본주의체제도 존속 불가능

김종인 : 순수한 계획경제체제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순수 자본주의체제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1929년 월가가 붕괴되기 전까지 고전주의경제학에 바탕해 시장경제가 진행되다가 29년에 월가가 붕괴됐습니다.

고전주의 경제학으로는 문제 해결이 없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 뉴딜정책을 시행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미국 경제가 회복이 되고, 시장경제 체제에 정부 역할을 가미한 시스템이 30년간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전성인 : 결국 루즈벨트가 이끈 뉴딜정책이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운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뉴딜을 운하개발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회정책적 측면이 매우 강했던 것 아닌지요?

김종인 : 그렇습니다. 뉴딜은 상당히 사회개혁적 측면이 있고, 기본적으로 경제의 틀을 바꿨죠. 예를 들면 30년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도 했고, 사회보장(social security) 제도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도입됐어요. 그 이후 이런 전통은 미국 경제정책의 대전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이후인 1952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정부가 들어서자 일각에서는 뉴딜정책을 무효화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오히려 뉴딜을 보강했습니다. 캐네디-존슨도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국가경제가 더 잘 될 수 있다고 봤어요. 60년대 중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은 "우리 모두 케인지안이라고 해도 좋다"는 얘기까지 했죠. 70년대 시카고학파들이 들어왔는데 그나마 닉슨은 자유주의를 극단으로 추진하지 않고 조화를 이뤘습니다. 닉슨은 심지어 71년 달러화의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임금통제와 수입통제를 하는 등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전성인 : 주제가 뉴딜에서 국제 금융체제의 위기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이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불완전성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70년대 이후 조금씩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김종인 :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케인즈 이론이 더 이상 경제정책에 효험이 없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소위 신자유주의경제가 시작이 됐습니다. 레이건 혁명이라고들 하는데 그 이후부터 미국의 경제정책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규제완화 하고, 사유화 하고, 이런 식으로 30년 정도 미국경제 운영이 진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양극화가 심화됐어요. 1978년부터 시작해서 2005년까지 미국 근로자의 실질임금(명목임금에서 물가상승률을 뺀)은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4반세기동안 미국 근로자의 실질 임금인상률은 '0'

전성인: 양극화가 심화되면 누구는 떼돈을 벌고 누구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지요. 이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몫 챙기려는 심리가 팽배해지고 이것이 사회의 건전성을 좀먹게 되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에서도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김종인 :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경제운영에 있어 도덕이 무너져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소련 경제체제가 무너진 뒤 자본주의체제가 우월한 것처럼 인식되고, 자본주의체제 운영을 가속화했습니다. '개인 자유의 극대화가 더 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사회의 도덕률이 무너져 버렸어요. 열심히 일해 자기 경제활동에 걸맞은 보상을 얻는 게 미국사회의 전통이었는데 그게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싼 이자로 돈을 공급받아서 집도 사고 하니까 이게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진 것처럼 생각됐습니다.

특히 자본시장 규제를 너무 없애버리는 정책을 취했어요. 투자은행은 감독을 전혀 받을 필요 없는 형태로 운영됐고, 거기서 싹이 시작된 게 신용 위험 전가(credit risk transfer)부터 시작해서 파생상품이 생겨나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전성인 : 드디어 최근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서브프라임 위기까지 왔는데요. 이번 위기는 방만한 금융정책에서부터 연유되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김종인 : 앨런 그린스펀은 자서전에서 마치 자기가 싼 금리정책을 취해 저소득층, 유색인종에 금융 혜택을 줘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처럼 말했더라구요. 본질적으로 금융을 갖고 사회정책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금융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집값, 자산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주택 경기 지표인 '케이스 쉴러 지수'를 보면 2001년부터 5년 동안에 주택 값이 106%, 더블(2배)이 됐어요. 자산효과에 의한 소비증대가 계속 이뤄지는 게 미국 경제를 뒷받침했는데 2006년 말부터 집값이 무너지니까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고 소위 말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금융을 가지고 신용위험 전가 방식을 통해 일종의 폭탄돌리기를 한 것입니다. 계산상으로만 돈이 계속 늘어나는 거죠. 일반실물과는 다른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디 한 군데가 막혀서 구멍이 나니까 전체 세계 금융이 마비됐어요.

하루 외환 거래량이 90년대 말 1조 달러에 불과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 하루에 2조 달러씩 거래되는 모양새를 가지다가 어느 한 군데가 정지가 돼 금융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현 금융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데, 시장에 맡겨 놓으면 치유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렇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최근에 와서 사뮤엘슨은 '시장경제 펀더멘탈리스트는 정서적 불구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어요.

"시장 문화는 절제의 문화를 필요로 한다"

전성인 : 결국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입니다. 처음이 이 좌담을 시작하면서 순수한 자본주의 체제는 많은 자기 모순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무절제한 이기심 역시 조화로운 상태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얘기했었는데 미국 경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결국 그런 교훈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종인 : 자본주의 체제도 안정된 발전을 위해 절제가 필요한데 제도적인 장치가 막아주지 않아서 이런 사태가 왔습니다. 심지어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막스 베버도 "시장 문화는 절제의 문화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절제 하지 못하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 자유주의자 버크도 "개인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 욕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전성인 : 정리를 좀 해보자면 경제체제 혹은 사회운용체제는 중도가 중요하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교하면, 이념형으로서 사회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동구권 몰락으로 증명이 됐고,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번 위기로 증명이 된 셈입니다. 사회주의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너무 무시했고, 자본주의는 합리적 이기심과 탐욕을 구분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자유를 밀어붙이는 게 문제였습니다.

김종인 : 인간의 합리적 이기심은 없다고 봅니다.

3대 화자 돌림, 자유화ㆍ규제완화ㆍ민영화가 화근

전성인 : 그리고 미국경제 역사를 20세기 초반부터 보자면 1930년대에 큰 물줄기의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196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레이건 집권으로 또 큰 틀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김종인 : 3대 화자 돌림,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가 화근을 불러왔다고 봐요.

전성인 : 개인의 근면함, 절제라는 가치와 탐욕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미국사회가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특히 금융은 조심스럽게 운영돼야 하는데 사회정책적 도구로 쓰다보니까 결과적으로 방만해질 수밖에 없었고 정책적 차원에서도 오류가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탐욕이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 위험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환상까지 이어지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 오바마 정부가 이제 공식 출범했습니다. 오바마가 어제(1월 20일) 취임하면서 링컨의 사회 통합 상징을 많이 사용했고, 경제적으로는 루즈벨트식 뉴딜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를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현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종인 : 오바마가 취임하는 날,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미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IMF가 리세션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시장의 경기 순환에 의해 발생한 리세션은 11-18개월 지나면 정상화됐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맞물린 침체는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3~4배 더 걸려요. 금년 하반기에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25%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경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도 회복이 어렵지 않겠어요? 글로벌위기라고 얘기하는데 해결은 각 나라가 해야 됩니다. 남의 나라 사정을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외분업에 의존하고 본질적으로 수출지향적인 경제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에 주 수출시장 경제가 정상화돼서 수출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성장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성인 : 그래도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미국 경제는 궁극적으로는 다시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오바마 신임 대통령 역시 여기에 정치 생명을 걸지 않겠습니까?

김종인 : 오바마 체제의 출범이 오바마의 말대로 미국을 리메이킹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아직은 정책상 여유는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은 또 R&D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가 얘기한 녹색성장을 위해 정부가 큰 관심을 갖고 하면 새 성장동력이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하면 2~3년 지난 다음에 새 싹이 틀 수 있어요. 하지만 미국이 그런다고 다른 나라가 자기 체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똑같이 흉내 내는 건 굉장히 우둔한 판단입니다.

오바마,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강화할 것

전성인 : 미국의 새로운 고질병이 될 수 있는 탐욕과 무절제에 대해서도 어떤 치유책이 나올까요?

김종인 : 오바마의 취임사를 보면 정부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미국사회는 무절제와 탐욕 때문에 위기를 맞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지만 5000만 명 가까운 국민이 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건 미국으로서도 수치스러운 얘기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는 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역사의 종언'을 얘기 하더니, 이번 경제위기를 보고 '레이건 혁명의 종말'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나타난 현상들 즉, 탐욕을 무절제하게 허용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시장과 개인의 활동에 맡기겠다는 소위 레이건 혁명이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시장경제의 효율은 최대한 이용하되 정부 역할은 하겠다고 해요.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와 달라 스스로 수정하는 능력이 있어요.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되지 않았냐는 사람도 있지만, 마르크스 이론의 문제는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입니다. 지난 20-30년 동안 미국 중산층이 무너져, 이대로 가서는 미국의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니까 오바마가 당선된 것입니다. 미국은 역동적인 국가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재정비하고 가는 계기를 맞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전성인 : 저도 한 시대가 이제 종말을 고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레이건이 1기보다는 2기 때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받고 당선됐습니다. 그야말로 압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시작했던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가 그런 부담 속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죠.

오바마가 대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꾀하겠지만 대외 정책에 있어서도 적잖은 변화를 꾀하리라고 예상됩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와 맞물려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는데요?

김종인 : 글로벌 위기라고 하지만 해결은 각자 자기나라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은 자유무역 한다고 하지만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미FTA는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곤란하다, 좀더 있다 하자"고 하면 못하죠. 쉽게 이 문제가 한미 간에 타결되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미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이 GM,크라이슬러 등 문제를 완전히 내버려 두지 않는 한, 그 문제는 계속 현안으로 남아서 한미FTA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미국 공화당 일각에서는 'GM이 없어진들 어떠냐' 그렇게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GM은 미국의 상징입니다. GM은 자동차말고 군수관계 물자 등도 많이 생산하죠. 그래서 금방 전환되기는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확실히 정부가 경제정책에 종전보다 훨씬 많은 개입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전성인 :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요? 물론 국내 경제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간단히 견해를 밝혀 주시죠.

김종인 : 우리나라도 쌍용차 사태 등이 터지면서 자동차산업을 구조조정 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서 문제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최근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해줬으면 한다고 얘기했는데 삼성은 아직도 삼성자동차의 빚 4조5000억도 못 갚고 있는데, 무슨 자동차 산업에 다시 진출합니까. 김문수 지사야 쌍용차가 있는 평택이라든가 경기도 지역경제를 위해 그런 말을 했겠지요. 옛날에 삼성차도 부산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허가를 따냈는데, 세상에 지역개발을 위해 산업정책을 결정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저금리정책, 무작정 미국 따라가다간 큰일 날 수도

전성인 : 미국 경제는 아직도 위기가 진행 중이고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에서는 계속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준은 사상 초유의 돈을 풀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인 : 현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인 버냉키는 30년대 디플레이션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그때 정책대응에 실패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한정 통화공급을 하고 있어요. 또 이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일본의 90년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90년대 대응책이 지금 미국과 똑같아요. 공공정책을 통해 재정을 풀고 제로 금리로 낮추는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퍼부은 돈이 10년 동안 1조2000억 달러입니다. 하지만 하나도 문제를 해결 못 했어요.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왜 그렇게 됐느냐면 일본은 구조적 문제를 경기문제로 보고 경기부양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도 재정지출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데 사실은 말이 사회간접자본이지 수술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도로 보수 수준인데요.

미국은 일본처럼 우둔한 짓 하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일본은 사회간접자본 많이 해놨기 때문에 돈을 넣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때 일본이 한 게 일본의 강 110개를 갖다가 물줄기 바꾸고 댐 만들어 전부 그냥 시멘트화 하는 데 돈을 퍼부었습니다. 결과는 일본의 재정적자만 엄청나게 늘었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금리를 저금리로 해서 제로 정도까지 끌고 가고 정부가 공공지출을 통해서 빚을 지는 상황에서 나중에 통화정책에 행동반경이 생기겠습니까. 금리를 올리면 정부 재정부담이 엄청나게 커져버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미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우리는 상황이 조금 다르죠. 물가상승률이 4%나 되는 나라가 미국 따라간다고 무작정 금리를 낮추어도 되겠나 싶습니다.

전성인 : 경제위기 왔을 때 돈을 풀어서 막고자 하는 건 전임 연준 이사장인 그린스펀이 닷컴 버블이 꺼졌을 때 작은 스케일로 했는데, 지금 많은 사람이 그 정책이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버냉키도 작년 9월 7000억 불 구제금융법안 통과될 때까지는 아무 조치 없이 긴급자금을 투여하고 금리를 낮췄습니다. 그러다가 1년반 동안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 못 주고 결국 구제금융법안 나와서 환부에 직접 돈 넣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조금씩 문제가 해결되는 거 같습니다. 결국 단순한 미봉책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셈이죠.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정부가 썼던 미봉책도 언급 안할 수 없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엄청난 외화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는데 정부의 대응방식이 참으로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외환이 부족하니 어차피 외환보유액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시장에 나가서 무조건 달러를 파는 방식이 있고, 또 하나는 현금이 부족한 은행에 스왑 자금을 대주는 등 목표를 정해서 넣어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한은 지난해 6-8월에 시장에 들어가서 무작정 외화를 파는 방식을 쓰다가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니까 타겟팅으로 전환했어요. 무작정 시장에 달러화를 뿌리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겨우 깨달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금리를 무작정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중국, '8% 성장'은 이루겠지만…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2> 세계경제(하)


경제적 이윤 추구에 있어 무절제한 자유와 금융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음을 미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을 통해서도 똑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이라는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운용되던 영국 경제는 79년 대처가 집권하면서 한쪽 축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영국 경제는 런던의 시티(City)를 중심으로 한 금융업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타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은 이번 금융위기에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이번 금융위기의 여파로 침체에 들어간 데 이어 미국경제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중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식고 있는 것은 한국경제 전망을 가장 어둡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김종인 전 의원은 올해 혁명 60주년, 개혁개방 30주년 등을 맞이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사회적 긴장의 고조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8% 경제 성장을 달성하려 애쓸 것이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값싼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야만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8% 성장이 아주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 올해 8%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중국에 수출용 중간재 등을 주로 수출하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에는 먹을거리를 의존하고, 일본에는 부품을 의존하고, 미국에는 금융시장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결코 간단히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1일 김종인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유럽경제: 영국의 고통이 유난히 큰 이유는?

전성인 :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키우는 데 탐욕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관심을 유럽 쪽으로 한 번 돌려 보고 싶은데요, 유럽에서는 영국과 대륙국가들이 이번 위기에서 대비되는데, 영국 쪽 상황이 특히 더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이 특별히 더 탐욕이 과했나요. 물론 독일 경제가 많은 통제를 받고 국민성이 절제를 중시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영국도 방종의 국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영국이 단순히 미국과의 긴밀성 때문에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인지, 금융이라는 특정산업을 특화한 결과로 위험에 노출된 것인지, 영국의 어려움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김종인 : 영국은 자본주의 최초 발상지이자,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고,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가 탄생한 나라입니다. 시장에 의한 경제운용을 제대로 한 나라죠. 따라서 시장경제 운용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 경제 위기를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 경제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국은 2차 대전 전까지 식민지를 통해 부를 창출했습니다. 남의 나라 것 가져다가 공짜로 먹고 산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다가 영국은 20세기 들어와 식민지를 많이 상실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부의 원천이 없어지니까 고통을 받았죠. 그래서 한때 영국이 유럽의 병자처럼 여겨졌죠.

그때까지 소위 보수당은 주로 고전적 자본주의 이론에 입각해 경제정책을 운용해왔습니다. 이어 노동당을 통해 2차 대전 후 복지정책인 '베버리지 플랜(Beveridge Plan)'이 실현되면서 두 가지가 혼합이 된 나라, 즉 사회안전망이 같이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영국입니다. 이런 영국이 70년대에 경제 상황이 이탈리아만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처가 79년 등장하게 됐고, 보수당의 기본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어 하이에크 같은 골수 자유주의로 돌아섰죠.

다른 한편 식민지로 먹고 살던 영국이 주요 산업으로 발전시킨 게 금융업이었습니다. 60년대 말에 이미 빅뱅을 통해 유로달러 마켓을 형성했어요. 그러다가 영국이 76년에 IMF 사태를 겪기도 했죠. 대처가 정권을 잡고 82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제조업은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됐습니다. 런던의 시티만 계속 활황인 상황이 계속 됐는데, 영국은 GDP 부가가치 중에서 금융 창출 부가가치가 다른 유럽국가보다 훨씬 높아요. 그래서 이번 금융위기가 터지니 영국이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죠.

전성인 : 결국 골수 자유주의 노선과 금융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이런 경제위기의 이유가 된 것이군요. 우리나라도 요즘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만든다는 말이 많이 있는데 영국의 고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독일 쪽은 어떻습니까?

독일, '미국 금융 메카니즘 추종'을 후회하다

김종인 : 이에 비해 독일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독일이 마치 사회주의 경제 운용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내가 알기론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가장 충실히 한 나라입니다. 독일은 1948년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장경제를 채택했어요. 독일은 1880년대부터 비스마르크 총리가 정치적 이유에서 복지를 늘렸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니까 그걸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근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정책적 배려를 시작했어요. 이게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회이므로 2차 대전 이후 49년 독일연방공화국이 성립되고 경제체제를 소셜 마켓 이코노미(사회적 시장경제 체제, social market economy)로 정립했죠.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 잘못 전달돼서 사회주의처럼 생각하는데 여기서 얘기하는 소셜은 시장경제의 모순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막아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전성인: 공부가 모자라면 이상한 착각을 하게 되지요. 한 때 막스 베버(Max Weber)의 저작이 자본론의 저자인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작으로 오인되어 수입금지되었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계속 독일에 대한 말씀을 부탁합니다.

김종인: 미국에서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할 때 '미국의 시장경제가 독일의 시장경제만도 못하다. 최소한 독일 수준까지는 시장에 자유를 줘야 한다'는 지적을 한 책도 있었어요.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독일은 시장경제를 충실히 하는 나라입니다. 독일은 여태까지 가격통제와 임금통제를 해본 적이 없어요. 영국과 미국은 다 했었죠. 그런데 통일하는 과정에서 통일 비용을 부담하다 보니 경제가 어려워져 독일이 2000년~2002년에는 유럽의 병자처럼 여겨졌어요. 하지만 2002년 이후에는 다시 변화를 가져와서 원래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 독일 금융도 큰 피해를 봤습니다. 독일 금융 내에서도 미국 금융 메커니즘대로 가자, 그런 주장이 힘을 얻었고, 특히 주정부 소유 은행의 사고가 제일 컸어요. 주정부가 통제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감사위원회가 전부 정치인으로 금융도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서 하고, 또 저축이 많은 나라라서 돈이 남아나니까 어디 가서 돈 벌까 하다가 미국 파생상품에 투자하고...독일이 자기 전통 지켰으면 큰 손실 안 봤을 텐데 공연히 미국 금융 따라가다 다친 거죠.

내가 보기에 시스템 자체, 영미식/독일식 이런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유럽도 알프스 동쪽은 시장 친화적이고, 서쪽은 정부간섭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운용한 나라들입니다. 우리가 세부적으로 인식 못하니까 독일을 무슨 사회주의 경제처럼 보는데, 독일이 사회주의식으로 하면 오늘날 저렇게 성공할 수 없어요. 다만 거기는 우리나라 같은 재벌이 없고 중소기업 섹터가 수출의 70%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 경쟁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유로화의 위력 입증돼

전성인 : 독일이 위험을 벗어난 데에는 영국과 달리 유로화 권역에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요?

김종인 : 이번 금융위기에 유럽은 영국 파운드화를 제외하고 비교적 안정추세입니다. 유로가 99년에 도입될 당시 미국 경제학자들은 '몇 년 안 가서 무너질 것이다. 한번 경제위기 오면 산산이 부서져서 자기들끼리 전쟁 할지도 모른다'고 혹평 했었죠.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 겪고 보니 유로 가입한 국가는 환율이 안정돼 있어 영향을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 들어가려고 했던 덴마크, 체코 이런 나라도 어떻게 하면 빨리 들어갈까 준비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영국 파운드와 유로의 환율이 거의 1:1입니다. 요새 독일 사람들이 영국으로 쇼핑 많이 간다고 해요. 내가 보기에 영국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1955년 처음에 EC(유럽공동체) 만들어질 때는 영국의 처칠 수상도 참여했어요. 그런데 처칠이 프랑스와 독일을 지칭하며 "맨날 싸움하던 놈들이 공동시장을 어떻게 만드냐"고 비난했죠. 그러다 60년대 초에 오니 이게 예상과 달리 잘 돌아가서 영국도 가입을 원했지만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안 받아줬어요. 드골이 퇴임한 후 70년대 초에 영국은 겨우 EC 가입했습니다.

사실 유로는 독일 통일 때문에 탄생한 것입니다. 영국은 독일 통일을 끝까지 반대했어요. 독일이 통일 때문에 주변국 반대가 심하니 통화주권을 포기해버린 것이죠. 이때도 영국은 전통적인 자존심을 내세워 유로화 탄생에 참여를 거부했지요. 올해가 유로 도입 10년인데, 지금 유로가 없었다면 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전성인 : 그 다음 중국경제를 짚어봤으면 합니다. 요새 중국경제의 추락속도가 만만치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이 정도로 빨리 식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새 중국의 힘든 모습을 보면 거의 아연실색할 정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격감했습니다. 한때 우리는 중국을 끼고 있으니 끄떡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올해는 1년 내내 우리나라에 중국이 커다란 부담될 것이란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종인 : 그동안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미국경제가 식게 되면 그때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이 미국경제를 보완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경제 위기를 맞으니까 중국과 인도 경제도 같이 내려앉았어요. 중국이 미국, 유럽의 수출로 매년 10% 이상 경제 성장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수출위주 경제운용은 금년에 어려울 것입니다.

중국, 내수 위주 경제운용으로 돌아설 것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하면 어떻게 될 거냐. 내가 보기엔 중국 정부의 기본 생각이 금년도 8% 경제 성장을 꼭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공산 혁명 60주년이고, 또 천안문 사태 20주년, 개혁개방 30주년입니다. 여러 가지가 겹친 해죠. 때문에 중국 정부는 8% 성장해서 사회적 긴장 고조를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고, 그래서 내수 쪽으로 방향을 틀 것 같습니다.

중국의 수출이 지금처럼 크게 늘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중국 상품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최근 BBC 방송에서 영국 가정주부가 사용하는 물건을 조사해보니까 80%가 중국 제품이더라구요. 미국도 월마트 상품이 거의 다 중국제입니다.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물가가 안 오른 건 다 중국 덕분입니다. 그래서 중국 수출은 어느 정도 유지되지 않겠냐 싶어요.

그렇다면 중국에서 수입은 어떻게 할 거냐.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와 관련된 것은 중국이 우리 수출 수요를 유지해줄 것인가, 이건 힘들 것 같아요. 중국은 정치적으로 8% 성장 안하면 사회 긴장관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수 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성인 : 중국이 내수 위주 성장이 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가능성은 심각하게 저해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리의 대중국 교역은 주로 중국의 수출규모나 투자규모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내수와는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경제와 관련된 다른 이슈 중 하나가 소위 통화전쟁 시나리오입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중국이 이번 기회에 아시아를 위안화 경제권으로 묶기 위해 통화 정책을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습니다. 중국이 1조 수천억 달러라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이참에 동남아 경제를 다 먹어버리려 한다는 얘기죠. 다른 시나리오는 중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가능성입니다. 이럴 경우 동아시아 국가에 추가부담으로 작용할 텐데요,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중국 위안화 기능은 미국과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을 계속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동시에 미국의 달러 가치의 키를 가진 게 중국이죠. 중국이 보유외환 중 1000억 달러만 다른 화폐로 바꾸면 달러 가치는 크게 폭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러가 폭락하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일은 안 할 거라고 봅니다.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가 한국 경제와 연관된 문제는 한국의 수출품목 중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게 과연 몇 개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제조업에서 중국한테 IT도 다 뺏겨 버렸어요. 이제 IT 분야도 내세울 게 별로 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중국경제와 관련해 수입수출이 다 걸려 있어요. 우리는 중국 식료품이 안 들어오면 소비자물가 관리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이미 중국 위안화가 중심통화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중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체결했는데, 그게 위안화 스왑입니다.

전성인 : 결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보다는 범 위안화 경제권의 확대라는 추세가 더 실현가능성이 크군요. 우리나라가 작년 말에 위안화 조달을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종인 : 우리나라는 일본에 핵심 부품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엔이 점점 비싸지면 부품 값이 비싸져 우리 수출 경쟁력은 더 없어집니다.

전성인 : 우리나라가 매우 어려운 위치입니다. 중국에는 먹을거리를 의존하고, 일본에는 부품 의존하고, 금융시장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김종인 : 그렇습니다. 우리는 GDP 대비 외채규모가 제일 큰 나라입니다.

국제금융체제 개혁, 당장은 규제강화에 초점

전성인 : 통화전쟁 문제와 연관해 달러 패권주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또 국제금융체제는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김종인 : 작년 11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어요. 갑작스럽게 20개국이 정해진 게 아니라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위기 극복을 위한 20개국 재무장관회의가 열렸었는데, 그 나라들이 다시 모인 것입니다. G20 회담 핵심주제는 왜 이런 국제금융위기가 발생했냐였고, 금융감독 체제 개선이 주요 의제가 됐습니다. 스위스 바젤의 중앙은행 협의회에 재무안정포럼이 있는데 거기서 이미 금융감독과 관련해 67개 항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G20 회의에서 그중 47개를 의제로 놓고 토론해 잠정 합의된 게 28개 항이고, 19개는 중장기적으로 논의하자고 얘기가 됐어요. 다음 공동의장국인 영국, 한국, 브라질이 28개 합의안으로 3월말까지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런던회의 때 내놓기로 했습니다.

IMF 체제개편 등 얘기도 있지만 중요한 게 소위 말하는 '세금피난처(tax haven)'를 인정 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금융감독 체제 개선에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도 동의했어요. 물론 그 회의에 오바마가 참석 안 했으니 이후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달러 기축통화 문제는 2차 대전 이후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될 때는 미국의 GDP가 전 세계의 반 이상 되던 때라서 미국과 영국이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도 전 세계 GDP의 25% 수준 밖에 안 되고, EU(유럽연합)도 자기들 다 합하면 그 정도 된다고 하니까, 기축통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IMF를 개편하려면 앞으로도 5년은 더 협상해야 될 것으로 보여요. 우선은 금융감독 체제에 국한해 논의되고 기축통화 문제는 자연적으로 시간흐름에 따라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성인 : 기축통화 문제는 아니더라도 달러 가치와 관련해서는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국제적 결제에 한해 달러화를 금과 태환해주다가 1971년 금태환이 정지됐습니다. 미국이 월남전을 치르면서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미국이 국제사회에 뿌리는 막대한 달러화를 일본과 독일이 국제수지 흑자국으로 계속 받았었죠. 그때만 해도 고정환율제를 유지했는데 결국 71년에 포기하면서 변동환율제가 나오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돈을 찍어내고 있죠.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기정사실 아닐까요?

인플레시대의 도래?

김종인 : 2월 중순 쯤 <구제금융 국가(Bailout Nation)>이란 책을 낼 예정인 미국 경제학자 배리 리톨츠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이 투입해야할 돈이 8조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 세계은행 총재 울펜손은 9조 달러가 더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어요. 리톨츠 계산에 따르면, 지금 구매력으로 계산해서 2차대전에 3조6000억 달러를 썼는데, 그 2배 이상인 8조를 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종전에는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달러를 받을 수용 태세가 돼 있어서 국제 유동성에 도움이 많이 됐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19세기말에도 미국이 세계적으로 악성 채무국이었어요. 그 빚을 어떻게 해결했냐면 금값을 배로 올려서 빚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때 가서 세계중심화폐로서 달러 의 위상에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전성인 : 오일쇼크 이후 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의 시대(the age of inflation)'란 용어를 쓸 정도로 문제의 기본은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지금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서 전 세계가 겪어야 하는 문제가 인플레이션입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인플레이션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을 보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마감하면서 <타임>지가 '탐욕의 시대(the age of greed)'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당시 적대적 인수합병, 기업 사냥꾼 등이 문제가 됐었죠.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가 지금 전 세계적인 탐욕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권은 유한하나 관료는 영원하다"
[김종인·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근본 개혁이 안되는 이유 <상>

 '한강의 기적'. 한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고도 성장'의 역사. 하지만 그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이제는 한국경제를 갉아먹고 있다고 김종인 박사는 평가한다.
특히 빠른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형성된 재벌체제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변화를 겪지 않았다. 김 박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경제정책은 친재벌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는 바뀌지 않는 관료체제는 재벌체제를 지탱해온 중요한 힘이다.

또 명확한 자기 철학과 비전 없이 관료에게 의존하는 통치자 역시 한국경제를 망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김 박사는 "우리 대통령들은 경제는 관료에게 맡기면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8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위기의 뿌리 : 개발연대에 형성된 재벌체제

전성인 : 오늘은 한국 경제가 걸어온 과거를 돌아 보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 얘기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지난 97년 IMF 위기 이후를 돌아보면, 왜 한국경제가 잘못 됐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위기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 잘못이 누적된 결과가 아닙니까? 또 이명박 정부가 작년 1년 동안 대응책을 잘못 써 위기를 키워오지 않았습니까?

김종인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용은 말만 그럴듯하게 했지 60-70년대 개발연대 방식과 실질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들 성향이 개발연대에서 배운 지식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지요. 개발연대 당시 압축성장 과정을 보면 소련의 계획경제와 비슷해요. 생산요소에 대한 민간소유를 인정했다는 것 빼고는 국가가 자원배분에 깊숙하게 개입한다는 점에서 계획경제와 똑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하니 자원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간인 몇 명에게 희소자원을 나눠줘 경제 일으켰어요. 특히 70년대 중화학공업 시절에는 몇 명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배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재벌구조는 60년대 생성기, 70년대 확장기를 거쳐, 70년대 말에 완성됐어요. 이어 80년대 안정기, 90년대 들어와서는 재벌이 정치세력 위에 서는 시대가 됐습니다.

전성인 : 결국 현재 위기의 원인을 따져보자면 60-70년대 개발연대에 형성된 재벌구조를 얘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군요.

김종인 : 그렇죠. 그만큼 재벌 문제가 중요하죠. 그런데 과거 정부는 한 번도 재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내가 90년대 초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해보려고 하다가 당시 정부 내에서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고 당사자인 재벌이 반대하니까 옥신각신 하다가 끝났습니다. 93년 들어 김영삼 정부가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게 뭡니까? 재벌에게 또 한번의 확장기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결국 이게 과잉투자를 하게 만들어서 과잉부채를 만들고 IMF 위기를 야기했습니다.

IMF 위기 후에는 뭐가 변했죠? 김대중 정부가 뭘 했습니까? 김대중 정부 초기에 있었던 구조개혁은 IMF의 요구 사항을 이행한 것에 불과합니다. 공적자금으로 은행 부실과 기업 부실 메꿔 주고 일부 기업의 소유자만 조금 바꿨을 뿐입니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9.11사태가 발생하고 난 다음부터 우리 경제관료의 입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 경제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구호의 차원에서마저도 잊혀지게 된 것이죠.

그 다음 노무현 정권은 경제정책이라고 특별히 한 게 없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데 경제정책은 오히려 친재벌적이었습니다. 좌파 냄새가 하나도 안 났어요. 우리는 재벌구조라고 하는 압축성장이 가져온 내부모순을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 노무현 정부가 뭘 특별히 잘못해서 현 위기가 왔다? 난 그렇게 안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한국경제의 기본틀을 못 바꿨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 사람들은 외환보유고 2600억 달러는 쌓아놓은 것 아닙니까?

물론 그게 진짜 대한민국 경제 실력 배양하면서 쌓은 것은 아닙니다. 금융기관이 외국에서 쉽게 단기로 끌어오면서 쉽게 쌓았습니다.

전성인 :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운 좋게도 세계 경제 여건도 좋았습니다.

김종인 :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을 비난하려면 우리나라 경제 기본구조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이런 것들을 못 했다고 딱 집어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처방이 나오지 않아요.

현 정부가 시작할 때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웠는데, '시장친화적(market friendly)'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정부 스스로가 '기업 친화적'이라는 말은 상식 밖의 얘기가 아닙니까?

전성인 : 시장에 기업 외에도 소비자, 근로자, 금융기관 등 여러 참가자가 있는데 특정 참가자에게만 친화적인 건 비시장적인 태도입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도 간단히 돌이켜 볼까요?

김종인 : 이명박 정부는 현 위기를 세계경제 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계경제가 위험신호를 보낸 것은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나면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 2007년 12월 말이면 앞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떤 목표를 제시했습니까?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경제정책 목표를 세우고 작년 8월까지만 해도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해온 것 아닌가요? 작년 9월에 리먼 브라더스 도산 사태가 벌어지니까 그제서야 허둥지둥하고 말았지요.

그 직전에 곧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리먼 브라더스를 산업은행이 인수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은이 혼자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서 리먼을 인수해야 한다고 부추겼어요.

전성인 : 동감입니다. 세계 경제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고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DJ정부, 요식행위로 끝난 구조조정-盧정부, 신자유주의 전면 등장

김종인 : 경제정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상황인식이 분명해야 됩니다. IMF 사태만 해도 그래요. 김대중 정부의 정책 잘못이 뭐였나? IMF 사태가 나서 모든 국민이 긴장했고, 기업도 큰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국경제의 근본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말만 그렇지, 구조조정을 1년 하고 끝났다고 하는데 끝나긴 뭐가 끝났습니까? 결국 끝나지 않았는데 끝났다고 했다가 2000년 들어와서 문제가 또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2000년 8월초에 경제팀을 이헌재 장관에서 진념 장관으로 바꿨는데, 새로운 경제팀장의 말인즉 "경제를 현재와 같이 끌고 가면 대통령 임기 말까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했다가 2주일도 안 되서 "4대 부문에 2차 구조조정한다, 2002년 1월 말까지 끝낸다" 고 했습니다. 어떻게 6개월 동안에 4대 부문 구조조정을 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러다가 이제는 기반은 구축했으니 앞으로 구조개혁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2001년 9.11사태가 났습니다. 9.11 사태가 나서 갑작스럽게 세계경제를 비관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세계경제가 침체할 것이니 우리도 경기부양 해야겠다고. 그때부터 구조조정이란 말이 싹 사라졌어요. 그리고 나온 것이 그해 11월에 경기부양정책이에요. 이게 결국 부동산 규제완화한 것 아니요? 한국은행은 계속해서 금리 내리고 그래서 부동산에 불이 붙은 거 아닙니까? 이걸 결국 노무현 정권이 연장한 셈인데, 노무현 정권은 이미 부동산 투기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출범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그러니 김대중 정부 때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수립한 사람을 다시 경제총수로 앉힌 것 아닙니까.

전성인 : 2000년대 초반의 상황은 저도 생생합니다. 저도 당시 무리를 해서 집을 샀지요. 엄청난 돈을 대출 받아서요. 그 뒤로 집값이 정신없이 오르더라고요. 아마 이 때 집을 산 사람들은 대출받은 액수만큼씩은 다 돈을 벌었을 거예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한국 사회에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경제학자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었지요. 그리고 그 때 집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금리를 인상하여 돈줄을 죄어야 한다고 글을 썼지요. 그랬더니 경제신문들이 저를 정신나간 경제학자쯤으로 치부하더군요.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대기업은 증권시장 등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니 은행은 가계부문에 대출해 주는 것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계대출 늘어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컬럼을 써대기도 했지요. 이분은 그 후 결국 관계로 진출했지요.

김종인 : 내 경험을 얘기하자면, 87년 10월 19일에 미국에서 블랙먼데이가 있은 다음에 대선을 치렀어요. 노태우 씨가 당선됐는데, 내가 대통령 취임 전에 경제 관련 얘기를 나누는데 "당신 하고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고 말하더라구요. 무슨 얘기냐면 다른 사람들은 세계경제가 급속하게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갈 수 있으니 경기부양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때 내가 지금은 1929년 상황과 달라 세계경제가 불황으로 갈 여건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안 그래도 선거 이후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상황이었고, 취임하고 나면 올림픽 특수까지 겹칠 텐데, 이를 감안하면 여기서 경기부양책을 쓰면 큰일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 10여년이 흐른 뒤 9.11 사태 직후에도 똑같은 소리를 경제관료들이 얘기 한 거에요. 경기부양 해야 한다고. 그래서 DJ 정부에서 말이 구조조정이지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못 했습니다. 이헌재는 교수들 모아놓고 자기는 신자유주의자고 정운찬 교수는 케인지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구조조정할 사람이 자기가 신자유주의자라고 하면 어쩔거요?

우리나라 정책가들이 뭘 잘못하냐면 기업 구조조정과 정부 구조조정을 식별을 못 한다는 겁니다. 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기업들 자신이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고, 정부 구조조정은 전 산업을 조망하여 한국경제가 어떻게 될지 보고 해야 하는 건데 그런 게 머리에 없어요. 그러니 김대중 정부 때 땜질해서 지나간 거지요. 김대중 씨를 병원장에 비유하면 한국경제라는 환자를 고치려고 경제장관들을 모아 수술하라 했더니, 이 사람들이 배를 갈라 놓고 속을 보니 뭘 끄집어내면 피 튀고 골치 아플 거 같으니 다시 덮은 뒤 몽혼주사 놓고 아프지 않은 거 같으니 다 했다고 한 게 김대중식 구조조정이다. 그런 것이 그 다음에도 해결이 안 되고 계속 끌고 왔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오니 신자유주의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식이었어요.

전성인 :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조금만 외부의 경제여건이 악화되어도 한국 경제는 휘청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경험하는 경제위기도 결국은 어느 특정 정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몇십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무사안일주의의 산물인 것 같아요.

김종인 : 결국 그러다가 이번 위기를 맞게 됐죠. 지금 미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이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우리는 수출위주 경제운용으로 해외시장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보니 세계경제가 무너지면 살아날 길이 없는 거죠. 협소한 내수시장에 소비를 늘려봐야 얼마나 늘리겠습니까? 국내소비도, 해외시장도 형편없으니 어떤 기업가가 투자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니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몇몇 기업에 대한민국 경제를 너무 맡겨 놓고 있어요. 국가경제 전체를 이렇게 끌고 가도 괜찮겠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평화연구가가 이렇게 묻더라구요. 지금 세계평화가 지속되는 한 한국도 괜찮은데 갑자기 세계에 큰 충격이 와서 교역이 중단되는 사태가 왔을 때 당신 나라가 먹고살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소개해달라.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국가운용이라는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상당히 취약해요. 최근에 와서 삼성전자가 적자가 나니까 대한민국이 큰일 났구나 이런 소리를 하는 여건이 될 수밖에 없어요.

10년 주기로 찾아온 경제위기, 세계경제 호황 덕에 넘겼으나…

전성인 : 97년 여름에도 삼성전자가 적자 났다는 얘기가 나와서 주식시장이 난리가 났었죠. 좀 정리하자면 우리경제의 제일 큰 문제가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성장에 의한 과실을 특정인에게 집중시키다 보니 재벌체제라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이걸 지금까지 끌고 왔다는 것과 함께 거시적 정책에 있어 섣부른 경기부양정책, 특히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정책들에 잘못이 많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은 97년 IMF 위기 이전에도 10년을 주기로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위기라고 얘기할 만큼의 경제규모도 안 됐으니까 제외하더라도 70년대 이후 경제위기가 반복됐습니다.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갔습니까?

김종인 : 1970년대 3차 5개년 경제개발 와중에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와서 경기가 침체되고 외환보유고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75년에 처음으로 수출 목표를 달성을 못 했어요. 물론 그 후에 만회를 했지요. 그걸 두고서 우리나라가 정책을 잘해서 위기를 극복했다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당시 갑작스럽게 중동건설이 붐이 불었고, 세계경제도 1차 오일쇼크의 위기를 극복하고 호황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초 목표였던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77년에 이미 달성했어요.

그 다음 온 위기가 85년였어요. 당시 외채망국론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도 85년 9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가 플라자협정(Plaza Accord)에 맺어 환율이 다 재조정돼 달러 가치가 떨어졌고, 우리는 또 달러에 비해 더 평가절하 돼서 1달러당 860원이던 환율을 890원까지 끌고 가서 위기를 넘겼어요. 86년 처음으로 45억 달러 흑자를 봤고, 그 뒤로 330억 달러 혹자를 기록했어요. 그러다가 환율이 달러당 690원까지 평가절상 되니까 90년부터 수출이 꺼지기 시작했죠.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사태 나서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오르니 국제수지도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제교역에서 330억 달러 흑자가 난 직후 우리 정부가 뭐라고 했나요? 선진국 다 됐다, 해외 가서 부동산 사는 거 자유화 한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경제정책이 밤낮 되풀이 하는 건데,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외환보유고가 2600억까지 늘어나니까 해외 부동산 구입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잖아요.

그 이후에 97년 IMF 위기가 왔는데, 그때도 기업들이 과잉투자를 하다보니까 국제수지 적자가 확 늘어난 겁니다. 이 IMF 위기도 우리가 자력으로 극복한 게 아닙니다. 97년 12월 24일에 미 재무부에서 우리나라에 1600억 달러에 달하는 스탠바이크레딧을 제공하기로 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전성인 : 한국 경제의 위기가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 구조개혁을 통해 극복했다기보다는 대외여건이 호전되면 묻어가는 식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인데요, 이런 측면에서 십여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위기는 대외 여건의 상황이 과거와는 매우 다릅니다.

김종인 : 그렇죠. 지금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해외 여건이 극도로 악화돼서 예전과 같은 '구세주'가 없어요. 이번 위기는 금융과 실물의 위기가 겹친 아주 특별한 상황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 보면 각국의 경제의 본질 자체에 변화가 올 것입니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됐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우리의 정책 역량이 어느 정도인가, 이게 앞으로 한국이 어느 정도 뻗어나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전성인 : 국가의 정책 생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경제관료인데요, 이들의 인식이 지난 수십년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반복되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과거 주요 경제관료들의 공과를 따져보는 것도 향후 우리가 경제운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함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 개인들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래요. 박정희 정권의 압축성장시대 경제관료의 역할과 오늘날 경제관료 역할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 당시 상황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니 일본의 50-60년대 체험을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와서 보면 그때 경제정책을 한 사람들이 굉장히 유능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 관료들이 무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금은 경제규모도 커지고 체제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훨씬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고 경제주체들의 이해와 요구도 다양해졌습니다.

어찌됐든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야할 건 고치고 넘어가야 하는데, 관료 생리상 자기가 조금 유능하다 생각되면 다 장관 하고 싶으니까 단기적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 경기부양 정책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책임의식이 없는 거죠. 우리가 과거의 잘못에는 대단히 관대한 편입니다. 언론도 과거에 대해서는 안 묻잖아요. 과거 실책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컴백하면 금의환향이라고 과거를 다 묻어버리고 하니까 정책이 개선될 리 있나요.

내가 연말에 개각과 관련해 강만수 장관의 교체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길래,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이 다 비슷한 사람들이던데, 차라리 강 장관이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했으니 그대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또 작년에 국회에 있을 때 내가 우리 보좌관들에게 그랬어요. 이명박이 당선돼 새로 자기사람으로 내각을 꾸리고 하지만 1년도 안 가서 경제는 또 관료체제로 갈 거다. 지금 보니 그대로 관료체제로 갔어요. 현 상황에서 뾰족한 수단도 없고 하니까 그냥 관료들한테 의존해서 가는 거지요. 나는 여기서 새로운 경제정책이 나올 거라고 별로 기대를 안 해요.

철학 없는 대통령+영혼 없는 관료=좌표 상실한 경제

전성인 :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남의 것을 가져다 도입할 때 그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쓰려는 것도 문제인 것같습니다.

김종인 : 그 대표적인 예가 1977년 7월 1일 부가가치세 입니다. 이 세금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경제정책이 대부분 일본 것을 그대로 베꼈는데요, 부가가치세는 일본이 없으니까 영국의 것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그런데 이 영국 부가세가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영국이 72년에 EC에 가입하면서 74년 부가가치세를 서둘러 도입했어요. 당시 EC는 세제통합 차원에서 부가가치세를 공통의 일반소비세로 채택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이를 대체할 소비세가 없었어요. 그래서 단일세율(single tax rate)로 부가가치세를 도입했죠. 그런데 영국이 단일세율로 운영해보니까 부작용이 많아서 실시 6개월 후 부가가치세의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74년 7월 재무부 부가가치세 시찰단이 영국을 방문하여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도입은 영국의 초기 부가가치세법을 그대로 이관하여 도입 실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정학 교과서에 나오는 부가가치세의 긍정적인 효과에 도취되어 우리 현실과는 무관하게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게 된 것이지요.

이 부가가치세가 76년 말 국회를 통과해 77년 7월 1일부터 10%의 단일세율로 시행이 되고 나서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공화당이 78년 선거에서 민주당한테 의석으로는 이겼지만 득표울면에서 1.2% 졌는데, 부가가치세 도입이 큰 역할을 했어요. 오죽하면 이만섭 씨가 10대 국회에 나와서 부가가치세를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나왔겠어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78년 선거 끝나자마자 경제팀을 싹 갈아버리고 신현확 부총리 체제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가세 개편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80년 신군부가 들어섰고, 이들이 79년 부마사태를 조사하니까 부가가치세가 근본 원인이었어요. 학생들의 데모에 상인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사태가 커진 거였죠. 그랬더니 부가세를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그것이 내가 정치권에 들어온 배경이 됐어요. 내가 부가세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니까 신군부 입장에서는 나를 데려다가 부가세 폐지를 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해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을 시켰어요. 나는 '부가가치세 도입하느라 엄청나게 비용을 많이 치렀는데 이걸 갑자기 폐지하면 또 문제가 생기니까 폐지하지는 말자'고 했지요.

전성인 : 부가가치세 도입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사실상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세금 때문에 정권이 날아간 또 하나의 사례가 종부세(종합부동산세)입니다.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었다고 봐요. 노무현 뿐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다 똑같았는데, 경제는 관료에게 맡기면 저절로 돌아간다는 사고를 본질적으로 갖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가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 말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투기는 노무현 대통령 초기에 이르기까지 진행 중인 상태였죠.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공급만 하면 된다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만 생각하는데, 큰 병이에요. 미국도 그것만 믿다가 금융위기를 맞지 않았습니까? 공급이 늘어나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지 누가 수요자인지 생각 안 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2003년 11월에 김진표 당시 재경부 장관이 투기억제책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이헌재로 장관으로 바뀌고 카드대란 등 여파로 경기침체가 오고 부동산이 주춤하기 시작하니까 경기를 진작시킨다면서 그해 8월에 투기억제책을 또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투기가 불붙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2005년에 국세청에 부동산 투기 유형을 조사하게 했어요. 그 당시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의 아파트 구입자를 조사했더니 1가구 3주택 보유자가 58%를 차지했어요. 내가 보기엔 그래서 종부세 개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종부세를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만 부과했으면 위헌이니 뭐니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을텐데, 1가구 1주택에도 부과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전성인 : 헌법재판소도 1가구 2주택 이상에만 종부세를 부과했으면 문제 삼기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1가구 1주택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가게 됐을까요?

김종인 : 한 사람이 몇십억 짜리 아파트 사는 건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생각한 거죠. 당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헌법보다 뜯어고치기 어려운 세금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거기에 재산세까지 현실화한다고 과표를 공시지가의 75%까지 올리다보니 전국민한테 조세저항을 일으킨 거죠.

아무리 관료가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조세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러면 안 됩니다. 또 우리가 세금에 대해 너무 몰라요. 유럽에서는 '세금의 역사는 곧 혁명의 역사다'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조세연구원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재정부에 세제연구실이 됐는데, 정권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합니다.

전성인 : 결국 경제정책은 어떤 철학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관료가 정책의 최고 결정자가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지 않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지요. 아니면 자리보전에만 연연하든지요.

김종인 : 경제정책을 나는 그렇게 봐요. 자기 확신과 동떨어진 정책을 할 수밖에 없으면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자기가 어제까지 주장하던 것도 180도 바꿔서 얘기하고, 그러니 경제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순간적으로 자기 입지 보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이명박 정권 초기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차관도 대표적으로 그런 식으로 가다가 경제에 큰 혼란을 준 케이스입니다. 대통령이 7%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7%는 안 되더라도 6%라도 끌고 가야 하지 않겠냐. 그런데 자기들도 국내 상황이 안 좋은 것을 아니까 수출을 늘려 성장률을 높아야 하는데, 수출 늘리는 방법 뭐냐, 원화 평가절하해서 밀어보자, 그렇게 해서 고환율 정책이 시작된 거 아니요? 되지도 않는 환율주권론을 주장하니 외환시장에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던 거죠.

우리나라 경제운용을 보면 딱 프랑스 혁명을 맞이한 루이 16세와 똑같아요. 루이 16세가 혁명 전날 밤까지 무도회를 열고 즐긴 사람인데, 마지막 죽기 전에 사형 집행관에게 한 말이 있어요. '나는 10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결국 왔다'고 했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정책이 그래요. 다 알면서 설마 올까 하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내가 뭐 잘못했냐는 식입니다.

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해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 등이 다 '정책의 실패는 법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경제정책하면 안 된다고 봐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경제장관이 자기 주장하다가 안 되면 자리를 버리는데, 우리나라는 관료 시스템으로 운용되다 보니 그런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도 좋다', 맞나?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근본 개혁이 안되는 이유 <하>


1960년대 후발주자였던 한국이 선진국을 빨리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몰아주기'였다. 한정된 자원을 특정 소수 기업에 몰아주면서 이들이 성장을 주도하게 했다. 이렇게 형성된 재벌체제는 지금까지 한번도 구조적인 변화를 겪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 동일시되는 현상은 국가가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스템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김종인 박사는 지적했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줄 경우 특정 기업들에 나라 경제를 의존하는 왜곡된 경제구조의 문제는 더 심화될 것이다. "산업자본이 들어가 금융을 점령한다면 한 기업의 몰락이 국가 전체 운묭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김 박사는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공정한 심판'으로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위기 극복은 요원한 일이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8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선성장 후분배, 분배는 과연 언제?

전성인 : 앞에서 산업화 이후 한국경제의 위기와 관료주의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재벌체제를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IMF 위기 이후 재벌개혁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주주권 강화, 이사회의 책임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순환출자, 문어발식 확장 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한 때 폐지되었다가 다시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혁의 배경에는 재벌들이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거대한 경제적 자원을 좌지우지한다는 데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쪽 얘기를 들어보면 좀 다릅니다. 예전에 암묵적으로 정부와 합의했던 것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기업들은 70년대 정부가 기업공개촉진법을 통해 기업 공개를 강제하면서, 당시 암묵적으로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는 걸 합의했다고 주장하던데요.

김종인 : 74년 5.29 조치로 기업공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공개적으로 선정된 기업은 법에 따라 재무구조를 공개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이는 72년 8.3 사채동결조치로 부실기업의 부채를 대거 탕감하는 혜택의 후속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업에게 불리한 것을 정부가 억지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원해서 해준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당시 정부가 재벌들과 경영권 보장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김용환 당시 경제수석이 만든 정책인데,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왜 그것을 기업의 사회 환원이라고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60년대 근로자들이 참고 견디고 해서 한국경제가 그만큼 온 건데 자본축적분의 일부라도 근로자들한테 주고 사회 환원이라고 해야지요. 내가 보기에는 빚을 많이 가진 기업들이 (주식매각을 통해 일반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재무적으로 허약한 회사를) 팔아먹는 거와 똑같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사회 환원이냐 그랬어요. 결국 기업공개촉진법은 기업들을 위해서 해준 겁니다.

기업은 솔직히 말해 어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윤추구 하려는 사람들 아니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만 경제를 맡겨 놓으면 최근 국제금융위기에서 보는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정부가 룰을 갖고 규제해야 하는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지요.

전성인 : 기업의 사회환원으로 논의가 흐르는데요. 그 때는 성장과 분배 중에서 거의 언제나 성장쪽이 우선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런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요.

김종인 : 많은 사람들이 흔히 선성장 후분배 논리를 내세워 파이를 키워야 나눠먹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후분배 된 적 있나요? 엄밀히 말해 분배는 정부가 하는 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재분배를 하는 것이죠. 분배와 관련해서 정부가 할수 있는 건 미국의 루즈벨트 뉴딜 때처럼 노동조합을 활성화해서 노동조합 의 힘을 보강하는 정도지요.

선성장 후분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얘기했지요. 70년대 당시로는 정부가 기업에 명령하면 꼼짝 못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한다고 생각해봐라. 성장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사이에 기업 힘이 커진다. 지금은 경제력이 정치력에 눌려있지만 점차 엇비슷한 상황으로 가게 될 거고 6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92년이 되면 경제력이 정치력을 압도할 거다. 지금 현재 상황이 그런 거 아닙니까? '어느 대기업이 망하면 우리 경제가 망하니 안 된다', 지금 우리 관료들이 그런 인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전체의 조화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게 될 수 없어요. 경제위기가 오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죠.

전성인 : 분배를 말씀하셨는데 박정희 정부 시절 도입한 것 중 그래도 분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게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 있지 않습니까?

김종인 : 재형저축이 어떻게 나왔느냐? 기업공개촉진법 도입 후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나왔어요.

내가 김용환 경제수석한테 한국경제를 총괄 입안하는 입장에서 너무 지엽적인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생각을 해야 한다. 산업사회에 새롭게 형성되는 세력인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고했죠.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는데, 이 분이 한 달 뒤 재무장관으로 가게 됐어요. 재무장관 되시더니 날 보자 그러더라구요. "김 교수 내가 재무장관으로서 여러 부처를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포괄적인 정책은 못한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재무장관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세제와 금융이니까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이나 합시다." 그래서 고병우 당시 차관보와 아웅산 참사로 숨진 하동선 이재국장, 이헌재 당시 금융정책과장 등이 같이 재산형성저축법을 논의했어요. 이렇게 해서 재산형성저축법이 시작된 것입니다.

재형저축은 일반 저축이 아니라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위해 정부가 통상의 이자에 플러스 알파를 더 주는 건데요, 재무부에서 재형저축법을 만들어서 차관회의에 올라가니까, 여기서 왜 근로자만 주느냐고 반대도 많았었지요. 그래서 내가 차관회의까지 가서 그 필요성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전성인 : 박정희 정부가 분배를 위해 또 도입한 정책들이 있었나요?

김종인 : 75년 봄 경제수석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내가 새로 생기는 사회세력에 대한 안전대책을 강조하는 사람이니 그 방안을 직접 만들어보라고 대통령께서 지시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혼자서 이 엄청난 작업을 못 한다고 하니까, 당신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성해서 위원회를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당시 서울대 조순 교수하고, 또 노동법 하는 서울대 김치선 교수, 인사 관리하는 정종진 연세대 경영학 교수, 개발경제하는 서상철 고려대 교수,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과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특보가 '금융회'라는 비공개 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 위원회에서 제일 먼저 한 게 노동법을 전반적으로 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박 대통령에게 직접 어떤 자료를 요구해도 좋고 정부 정책을 비판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동청장이 바뀌면서 얘기가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거 의료보험을 도입하자고 해서 만들려고 하는데 반대가 엄청났어요. 우리나라 실정에서 할 수 있냐는 거지요. 또 보건부에서는 73년 복지연금을 도입하려고 했어요. 일단 돈이 들어오고 나가지 않으니까 도입하자고 했는데 이것도 보류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내가 의료보험을 주창하니 당시 경제팀이 절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어쨌든 논쟁 끝에 박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보고 이거 하긴 해야겠는데 참모들이 다 반대하니까 최규하 총리를 시켜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교수들의 의견을 물어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평가교수단에서 내가 다시 의료보험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 보고서를 총리가 대통령께 보고하고 그 결과 의료보험 도입의 결정이 이뤄진 거죠.

DJ-노무현 정부, 연금 개혁 통해 양극화 심화

전성인 : 우리 경제정책 중에서 사회화합을 위한 것으로 대표적인 게 재형저축,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외환위기 이전에 도입됐던 것이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김종인 : 김대중 정부 때 최저생계비와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한 것에서 그쳤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일부에서 좌파라고 하는데 경제사회정책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 기업 친화적 정책을 한 사람들이라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년에 양극화가 문제라고 아무 대책 없이 얘기만 하는데 그쳤습니다. 내가 보기엔 노 대통령 스스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비전 2030'이라는 보고서를 하나 만들고 용두사미로 끝났지요.

민주화 이후 일반 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 시스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을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 노무현 정권이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시켰다고 보는데, 연금개혁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65세 이후 생계 안정 자금으로 도입된 게 국민연금인데, 이 돈만 받아서는 사실 생활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김대중 때도 수급액을 줄이고, 노무현 때도 연금개혁을 통해 줄였어요.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매번 일시적으로 위기가 있는 것처럼 했지만 지금처럼 생활이 급격하게 나빠진 적이 없어요. 경제가 기본적으로 성장하니까 생활은 계속 향상만 됐지요. 그래서 아직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위기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위기다, 위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기가 파급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어요. 나는 금년 하반기 가면 위기가 보다 강렬하게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성인 : 이제 금융 쪽 얘기를 좀 해봤으면 합니다. 개발연대 시대엔 우리나라 은행들이 한편으로는 자금 공급줄 역할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건설 붐 때도 확인됐는데 부실 기업을 떠안아서 재처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와서 시장개방하면서 자본자유화, 금융자율화를 얘기하다가 96년 OECD 가입하면서 자본시장을 확 개방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자본이 국내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나왔죠.

이명박 정부가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도 이런 비판을 등에 업은 것인데요. 지금 상황에서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이기 위한 자본확충이 어렵다,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산업자본에게도 길을 터주자는 게 금산분리 완화의 명분입니다.

국민ㆍ신한ㆍ하나 은행이 살아 남은 이유?

김종인 : 우리나라 은행은 IMF 위기 전까지만 해도 자본수집 기능만 했습니다. 예금을 모아서 돈은 정부의 지시에 의해 나눠줬어요. 정부도 금융 본래의 기능을 무시하고 자기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관으로 활용해, 우리나라에서 금융 전문인력이 양성되지 못했죠. 그렇게 오다가 82년에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린 장영자 사건이 터졌어요. 이 사건이 계기가 돼서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과 강경식 재무장관이 은행들의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은행들을 민영화하고 사채시장 양성화를 위해서 단자회사를 하루 아침에 20개 가까이 만들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국회 재무위원회에서 옥신각신했죠. 은행을 민영화하면 진짜 은행이 자율화될 수 있느냐 말이 많았는데 결국 민영화 됐지만 자율 경영은 못 했죠. 금융기관의 소유만 바뀌었지, 나머지는 크게 바뀐 게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90년대 들어오는 과정에서 큰 기업에 계속 돈을 대출해주는 대마불사가 이어졌고, 가끔씩 정부가 재벌의 여신규제 했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마저도 싹 없애버렸어요. 그러다가 IMF 위기가 터졌죠. IMF 위기로 오래된 은행은 부실은행으로 다 퇴출되거나 합병됐습니다.

조흥, 상업, 신탁, 서울은행 등 비교적 오래된 은행들이 없어지고, 국민, 신한, 하나은행 정도가 살아남았죠. 신한은행은 82년에 일본에서 금융실명제인 그린카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재일교포들의 자금으로 설립된 은행입니다. 또 하나은행은 보람은행이 단자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만들어졌으니까 IMF 때까지 부실이 별로 없었고, 주택은행과 합병된 국민은행은 서민은행이니까 큰 부실이 없어 살아남았습니다. 이 은행들도 아마 큰 기업이랑 거래했으면 다 망했을 겁니다. 내가 전에 국민은행 이사장을 8개월 가량했는데, 가서 보니까 '우리는 왜 큰 기업 대출을 못 하게 하느냐' 이게 불만이더라구요. 내가 IMF 이후에 이 은행 창립기념일에 가서 건배사를 하면서 과거 당신들이 기업 대출이 활발하지 못한 때가 있어서 살아난 거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IMF 이후 은행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의한 경영을 한다고 사외이사제, 스톡옵션, 이런 제도를 도입했어요. IMF 이후 문제가 된 건 금융정책당국이 겉멋만 든 것입니다. 과거 금융관행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글로벌 스탠다드 한다고 되겠어요? 보수체계만 올려주고 금융허브 만든다고 아우성만 치고 말입니다. 결국 금융허브 하려면 대형화해야 한다, 감독체제도 미국식으로 가야 하니 철저하게 하면 안 된다, 이런 논리를 앞세웠어요. 이게 2000년대 이후 정부의 은행 정책이었습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대형화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IMF 학습효과로 은행 돈 안 빌려 쓰고 내부 사내 유보금 쌓고 하니까, 소매금융을 활성화한다고 주택담보대출을 확 늘린 것 아닙니까? 신용 없는 사람도 일부러 신용 등급 올려서 대출해주고. 우리 은행들이 지금 곤란 겪는 이유가 미 서브프라임 여파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네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전성인: 금융기관 대형화 논리는 이번 정부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죠. 산업은행을 우리은행과 합병하여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그것이었지요. 관료들이 은행시장의 독과점 정도나 예금보험제도의 불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관치금융도 사실상 여전한 것 같고요.

김종인 :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답답하니까 중소기업에 왜 대출 안 해주냐고 은행들에 압력을 넣는데, 은행들 입장에서는 자기 생존이 급급하니까 돈을 안 푸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2%까지 낮춰도 회사채는 여전히 7-8% 금리입니다. 시장금리가 안 떨어지는 것입니다.

기업하는 사람은 항상 죽겠다고 하고 기회만 있으면 경제 핑계를 대면서 정부 제도에 구명을 뚫어 놓으려는 게 생리입니다. 정부가 그걸 따라가면 자기 발에 스스로 고랑 차는 꼴입니다.

금산분리 완화도 솔직히 얘기해서 지금 한국경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지금은 금산분리 완화한다고 산업자본이 금융에 들어갈 상황이 아닙니다. 또 나중에라도 산업자본이 들어가 금융을 점령한다면 한 기업의 몰락이 국가 전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합리적 판단을 할 관료들이 없어요. 나라의 장래를 보고, 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가야 하는가, 이런 개념이 경제관료들에게 없어요. 경제는 경제논리대로만 하고, 나머지 파생되는 문제는 경찰력으로 해소하거나 공안식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이 우리나라 70-80년대 관료들이었고,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관료에 포위된 대통령, 재벌에 포위된 관료

전성인 : 이제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넘어 주제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넘어온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종인 :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면 집권 초에 여러 비전을 얘기하지만 결국 자신이 없으면 권력이 관료들한테 가게 돼 있어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번에 새로 구성된 제2기 경제팀을 보니까 다시 재무부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더라구요. 노무현 정부 때는 경제기획원 출신이 주로 기용됐었는데요. 이번에 세 명(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모두 재부무 출신이더라구요. 문제는 이들이 금융만 다루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위기는 금융만 다루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재정, 사회정책도 다 알아야 합니다.

나는 김대중이 준비된 대통령이라 해서 이 사람은 뭔가 하겠지 기대를 걸었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한 정권은 초기 내각을 보면 대충 예측이 가능합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도 <프레시안>과 인터뷰하면서 이 얘기를 했어요. 이명박 정권도 초기 내각을 보고 1년도 못 가서 관료체제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고, 결국 그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전성인 : 관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긴 안목에서 정책을 세우고 철저하게 집행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단기미봉책과 무책임함 이 두 가지가 관료의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집단 이기주의도 있고요.

김종인 : 관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역대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제 갈 길을 못 갔던 겁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때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쌍용자동차나 삼성차나 다 정리했어야 했어요. 삼성차는 아직 빚도 다 못 갚고 있어요. 1심에서 법원이 3조1000억 원을 삼성차가 삼성생명의 주식을 팔아서 서울보증보험 등 채권단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삼성그룹과 채권단이 모두 항소해 현재도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처럼 빚도 못 갚고 있는 삼성차에게 쌍용차를 인수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죠. 하이닉스가 지금 매우 힘들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삼성 혼자 살아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하이닉스도 IMF 이후 구조조정 됐어야 했어요. 다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이 없고 무조건 살리고 보자는 식으로 끌고 오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또 출자총액제한제도도 무슨 성과를 보려고 도입을 했으면,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 폐지를 얘기해야지, 무조건 없애버리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정책을 세우지 말았어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PEF)를 허용하는 간투법(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만들 때 난 반대했어요. 도대체 우리나라 국민들 성향도 좀 파악해야될 거 아닙니까. 독일도 미국식 본 땄다가 이번에 혼이 난다고 뒤늦게 후회를 하는데….

전성인 : 이렇게 관료제가 잘못된 형태로 판을 치니까 정부가 제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종인 : 미국 금융위기와 관련한 상원 청문회에서 증권감독원(SEC) 사람이 나와서 증언을 했어요. 과거에 SEC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감독부서 인원이 140명이었는데, 이걸 부시 정권 들어 구조조정 한답시고 다 잘라버리고 1명만 남겨 놨다는 겁니다. 당시에 미 예산관리국(OMB) 디렉터로 JP모건 출신이 오면서 '감독이 필요없다'며 그런 식으로 운용했다는 겁니다.

미국의 금융사고는 결국 미국 정부의 금융규제 의무를 포기하면서 초래된 일입니다. 부시도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을 잘 썼어요. 미국은 녹색성장 기초기술이 개발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써먹지 못 했습니다. 석유 재벌 등이 정부에 로비를 해서 이런 산업이 발전하지 못 하도록 했어요. 정부는 객관적이고 냉철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관료들 입장에서 보면 50대에 장관되어서 1-2년 하다가 나가야 하니까 (관료를 그만 두면) 갈 데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기업들과 평소 감정이 나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대기업들의 부동산 대책할 때, 우리 비서관들이 나보고 '수석님 그런 식으로 하면 재벌들한테 죽습니다' 그랬어요. 그래서 '죽는 거 내가 죽지 당신들은 괜찮다'고 하고 내가 밀고 나갔어요. 그렇게 나온 게 5.8부동산 대책이지요.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했는데,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부동산을 잡으려면 원천을 잡아야 하는데, 원천은 못 잡고 밤낮 보따리 싸서 100평, 200평 사는 사람들을 잡아봤자 의미가 없어요. 86년부터 89년까지 대략 33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가 났어요. 그 기간동안 대기업들은 무려 130억 달러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땅 투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기업 소유의 토지에 세금을 높이 부과하더라도 기업이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주는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추진한 것입니다.

전성인 : 아마 관료 보고 그 정책을 하라고 했다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했을 겁니다.


"국가 속에 국가를 만드는 건 위험하다"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진로<상>

정부여당이 3일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된 은행법과 재벌의 문어발식 투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관련된 공정거래법 통과를 강행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세운 명분은 경제위기 대응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와 출총제 폐지는 재벌체제를 더욱 공고화시킨다는 점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일종의 국가 속의 국가인 거대 재벌에 국가 경제가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박사는 "4800만 국민이 몇몇 기업 집단에 의존해서 생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는 굉장히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인 기업은 언제가 무너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미국의 씨티뱅크, GM 등의 몰락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김종인 박사는 "국가를 경영하는 이들이 기업 프렌들리를 얘기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장친화적'인 것과 '기업친화적'인 것은 매우 다른 얘기다. 기업은 시장의 여러 주체 중 하나라는 점에서 '기업친화적'인 태도는 오히려 '반시장적'이다.
이날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2월 11일 김종인 박사의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결 과제

전성인 : 오늘은 대략 세 가지 정도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첫째, 한국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로 취임했는데, 앞으로 4년을 바라보면서 신임 경제팀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짚어봤으면 합니다.

둘째, 경제정책 생산 구조에 대해서 얘기 나눴으면 합니다. 이제까지는 경제 관료가 세월이 흘러도 예전에 썼던 정책을 그대로 꺼내서 다시 쓰는 구조였는데, 이 정책 생산 구조를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경제를 이끄는데 있어 어떤 경제철학이 필요한지 얘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한국처럼 자원이 없고 인구도 1억이 넘지 않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분단국가에서 어떤 철학을 갖고 경제를 운용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윤증현 경제팀이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김종인 : 나는 기본적으로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서 경제정책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문제가 뭡니까?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자기들이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구호를, 경제상황이 엄청나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려고 해서 혼란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상황인식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국제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국제경제 상황을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그렇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금년 말이나 가야 회복기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니까, 우리도 덩달아 우리 경제가 금년 상반기는 어렵다가 후반기에 가면 괜찮을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제금융시장의 문제점이 어떤 식으로 노출될지 누구도 예측 못하고 있어요.

지금 영국의 국가부도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차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국으로부터 온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세계 금융위기가 현재와 같이 해결이 안 된 상태로 가는데 올 하반기에 문제가 말끔히 해결돼서 실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금년에 마이너스 성장이 내년에 갑자기 플러스로 갈 것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이 0% 정도 성장해서 금년 수준으로 이어지는 소위 L자형 성장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들을 전제해야 하는데, 우리는 안이하게 그저 올해만 어떻게 넘기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금융허브, 5년전에 만들었으면…

또 현재 우리 금융이 안고 있는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별개입니다. 미국의 파생상품에 우리 금융기관이 뛰어 들어 발생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포럼 회장 등 저명하다는 경제전문가들이 10년 전부터 '금융만이 살길이다, 미국의 금융제도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역동성이 강하니까 금융허브가 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해왔어요. 금융허브를 만들려면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부실을 키워온 것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5-6년 전에 금융허브를 만들었으면 이번에 아이슬란드처럼 됐을 수 있습니다. 여건과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명심에만 사로잡혀 일을 추진하면 실패합니다.

얼마 전에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 청문회를 보니까 장관 후보자가 "본인이 금융감독위원장일 때가 대한민국 금융의 황금시대였다"고 주장하더라구요. 그 '황금시대'가 오늘날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혀 없어요. 그때 우리가 남의 나라 흉내 내면서 금융감독을 허술히 하고 금융허브 한다고 외형경쟁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황금기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이런 것들이 모두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현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좀 회의적입니다.

물론 한 가지 바뀐 것은 강만수 경제팀은 금년 경제성장률을 3%로 잡고, 누구도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얘기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새 기재부 장관이 -2% 성장을 예고했습니다. 그나마 정부가 숨 쉴 공간은 확보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선결과제입니다.

양극화 심화로 저소득층 이미 한계에 봉착

전성인 : 한국은 과거에 정말 운 좋게도 대외적 여건의 호전에 의해 경제위기를 해결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행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종인 : 한국경제가 1970년대부터 10년에 한번 꼴로 위기를 겪었는데, 그 때마다 국제여건이 호전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별로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올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국제여건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내년에 우리가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가 중병이 걸렸는데 대강 이런 약을 쓰면 괜찮을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모면하고 넘어가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김대중 정부가 99년도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했는데, 그때 대충 덮고 넘어간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된 것 아닙니까. 이런 잘못을 또 겪으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요. 쓸데없는 희망과 욕심을 버리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현 위기 상황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경제정책이 안고 가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양극화가 계속 심화됐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의 경제에 대한 고통이 더 심화될 게 분명합니다. 아직까지 크게 확산 안 됐는데, 올 상반기 지나고 하반기에 가면 피부에 닿는 고통이 심각할 것입니다. 지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규모를 놓고 정치권에서 옥신각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보장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어요.

전성인 : 그런데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또 다른 차원의 퍼주기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인 : 기재부 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역성장이 예상되니까 추가경정예산을 짜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방향 자체는 맞다고 봅니다. 다만 추경 속에는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사전에 반드시 계획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합니다. 정부 재정이 필요한 부문에 시기적절하게 투입돼야 하는데, 지난해 짠 올해 정부 예산을 보면 4대강 살리기가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이었습니다. 이건 경제위기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하려고 했던 사업입니다.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전 세계가 바라는 게 1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소비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다 어렵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각에서 내수를 증진시켜 수출을 보완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무리입니다. 우리나라 시장이 인구 5000만도 안 되는 협소한 시장인데다, 지금은 양극화로 소득 편차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현 상황에서는 고소득층이 소비를 늘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저소득층은 한계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저소득층의 생계라도 보장해줘서 세계경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견딜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제조업을 버리자고?

전성인 : 내수부양정책을 많이 운위하는데 핵심은 소비 진작입니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소비시장이 있을 경우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도 소규모고 구조도 양극화된 상황이라 내수 진작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의 내수부양은 진정한 의미의 소비수요 진작보다는 돈 넣고 반짝 경기가 좋아졌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건설경기 부양으로 간 것 같습니다.

주제를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앞에서 금융허브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이들은 금융을 현대적 의미의 서비스업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이 사실상 사양화됐고, 그러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이냐, 금융 밖에 없지 않느냐, 금융이라도 잘하자, 이런 주장을 합니다.

또 최근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면서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의 상황이 어렵습니다. 전체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제조업과 금융업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우리가 제조업을 버려서는 못 삽니다. 금융업은 우리의 여건을 보면서 생각해야지요. 대한민국 같은 경제 규모에서 국제금융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을 금방 일으킬 수 없어요.

산업정책에 있어 경쟁력만 고려할 수는 없어요. 농업이 경쟁력이 없으니까 농업은 다 없애버리자, 1년에 3-4억 달러 들이면 쌀을 사먹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세계경제에 이상이 생겨 교역이 중단되면 당장 식량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지만, 이를 다 해체하고 금융업 등 서비스업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영국이 제조업이 쇠잔하게 되면서 금융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금융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았어요. 그런데 지금 갑자기 금융위기가 닥치니까 국가부도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국가 권력과 비슷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진 기업집단들이 있습니다. 국가 속에 국가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런 대규모 기업집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정책적으로 짚고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4800만 국민이 몇 개의 기업집단에만 의존해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지금이야 영원히 갈 거 같지만 개인 기업은 언젠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미국의 씨티뱅크, GM,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이런 기업이 저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나요.

역대 대통령 중 '기업 프렌들리' 아닌 대통령이 있었나

전성인 : 국가 속의 국가를 만드는 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하셨는데, 현 정부는 경제위기를 핑계로 이런 재벌체제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는 금산분리 완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다 하면서 분주합니다. 이를 경제살리기로 포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김종인 :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기업 프렌들리를 얘기하는데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기업 프렌들리가 아닌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경제 때문에 기업 프렌들리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전반적인 기업의 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원래는 시장친화적(market friendly)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과 개별 기업들의 상황을 봐주는 기업 프렌들리는 다른 얘기입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은 경제구조를 왜곡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이걸 막으려면 어느 정도 체제가 잡힐 때까지 규제가 필요합니다.

전성인 : 오히려 과거에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았습니다. 업종전문화로 주력 업종을 정하라고 하고, 또 이런 업종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여신바스킷제로 돈을 쓰는 것을 제한하고, 재벌들이 계열사를 너무 많이 거느리지 못하게 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지금 와서는 거의 다 없어졌죠.

김종인 : 기본적으로는 상호출자, 순환출자 때문에 구조 개혁이 안 됩니다. 다 엉켜 있어서요.

전성인 : 소유 지배구조 관련 주식을 팔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금산법 파동을 보면 삼성이 명백하게 법을 위반한 것인데, 맨 마지막에는 특정 대기업이 망하면 어떻게 하냐, 기업 본부가 홍콩이나 미국으로 가면 어쩌냐, 이런 얘기가 나오고 결국 법을 삼성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규칙이 자꾸 왜곡됩니다.

김종인 : 정책을 다루는 관료들이 국가가 할 일과 개인 기업이 할 일을 식별 못 해서는 안 돼요. 1952년에 GM 사장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면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나라도 최근에 이와 유사하게 '삼성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세계경제 위기가 개인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나라 전체가 의존하는 구조를 가져가서는 안 되죠. 오늘날 GM에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한 기업의 흥망성쇠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처럼 절제가 잘 안 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규제를 다 풀면 안 됩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면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무한 자유 경쟁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의 무절제한 경제정책을 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경제로 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둔한 일입니다.

큰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경제에 핑계 대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풀어주면 경제가 잘된다고 하고, 단편적인 관료들은 쉽게 규제를 풀어줍니다. 이런 걸 보면 미국에서 60년대말 닉슨이 집권하고 밀튼 프리드만의 시카고 학파가 잠시 득세할 때가 있었는데, 당시 폴 사무엘슨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무엘슨이 '정치인들은 복잡한 얘기를 하면 들으려 하지 않고 프리드만처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한 얘기, 즉 구호에만을 솔깃해 한다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경제는 원래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 논리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가 없어요. 정부는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각 나라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는 게 시장원리에 맞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아니까 냉정하게 판단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 관료는 전혀 상황 인식을 못하고 지금도 도그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더 이상 부동산은 구원투수가 될 수 없다"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 현안<하>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9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투기 억제책 중 서울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규제를 풀었다. 부동산 정책을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일단 부동산 규제부터 푸는 것은 이명박 정부만 한 일은 아니다. IMF 위기로 어느 정도 부동산 거품이 해소된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치 공식처럼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을 활용한 결과, 부동산 거품은 IMF 위기 전보다 훨씬 많이 끼었다. 그리고 현재 그 거품이 꺼지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투기 촉발 정책'으로 거품 붕괴를 막고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반등하는 듯 했던 강남 부동산값이 2월 들어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김종인 박사는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고, 거품이 커질수록 꺼지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이 따른다"며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자칫 일본의 90년대 장기불황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가 '예고된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는 구조의 문제를 경기부양을 통해 회피하려는 '꼼수'를 버리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편집자


대한민국 노조가 유래 없는 강성 노조?

전성인 : 다음으로 이번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 문제는 지금 겉으로 드러난 기업 구조조정, 부동산 문제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노동문제로는 해고, 청년 실업,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2년 전에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었는데 올해 6-7월 한 획을 긋는 시기가 도래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올해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물가가 지난해 많이 상승했기 때문에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근로자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업 내부에서 임금 인상 등 노사 협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슈들이 생길 것 같습니다. 올해 노사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종인 : 나는 약간 생각을 달리 합니다. 다시 말해 올해 노사관계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노조가 아무리 강성이라고 하지만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노조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 불황 속에 노사관계가 합의를 봤다면서 지난 1월에는 노사분규가 없었다고 하는데 결국 시장 상황이 근로자 쪽에도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노조도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는 힘을 쓸 수가 없어요. 국민들이 지금 경제 때문에 다들 걱정하는데 노조가 조합의 이해 때문에 분규를 할 정도로 불합리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사회에서 87년 6.29선언 이전까지 노조는 거의 힘이 없었어요. 87년까지 경제가 발전했지만 소득 분배는 결코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7년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노사분규가 쏟아지고 임금이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2년까지 보니까 소득증대에 비해 임금이 크게 높아지진 않았어요. 지금 언필칭 노사문제 때문에 우리 경제가 잘 안 된 것처럼 몰아붙이지만, 그동안 우리경제가 잠재성장률 정도로는 늘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우리가 근로자 문제가 심각한 나라는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근로자들의 임금이 높아서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2004년에 수출이 30% 증가했고 그 후에도 2007년까지 매년 두 자리 숫자의 수출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진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수출이 그렇게 늘어날 수가 없죠. 우리가 일부 지역의 노사분규를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만큼 노동시장 유연한 나라가 어디 있나"

전성인: 불황기에는 언제나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말하면 정리해고 문제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더 많이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참여정부에서 씨앗을 뿌린 것인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재계의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데 지금 한국 노동시장만큼 유연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반을 넘는 상황인데요. 기존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해결 안 해주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해서 현 비정규직법이 생겼습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뒤 2년이 지나면 정규직 고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인데, 지금 나타나는 문제, 즉 기업주들이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다 해고하고 다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법을 만들 때부터 이미 우리가 다 예상하고 있던 문제입니다. 뻔히 알면서 순간적인 생색을 내기 위해 법제화하니까 불과 2년 만에 문제가 튀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과거 얘기를 좀 하자면 70년대 1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서구에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경기 상황과 관련 없이 노조들이 임금인상을 크게 요구했었습니다. 그게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죠. 서구도 경험으로 통해 알게 되면서 굉장히 많이 절제하고 있어요.

나는 우리 노조가 다른 나라에 비해 극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대중공업에서 과거에 크레인에 올라가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 노동운동사를 보면 영국의 노동운동은 피의 역사입니다. 남의 나라가 수백년 동안 겪은 것을 우리는 불과 십수년 동안 겪는 것 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대한민국 노조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노조라는 소리를 하는 건 좀 곤란하지요.

우리가 이미 발달된 나라에 가서 공부하면서 그 발전 과정은 안 보고 결과만 보고 왜 우리는 안 되냐고 그러는데, 우리는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것 아닙니까.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연말에 국회에서 일어난 사태를 놓고 이런 국회가 어딨냐고 하는데, 예전에 영국은 의회에서 의원들 간에 칼로 찌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본질적으로 노조가 경제상황을 넘어 자기 요구를 관철 못 시킨다고 봅니다. 우리가 기업노조 양태니까 특정 기업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그건 기업주와 노조 양쪽의 문제입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SOC 투자보다 저소득층 생계 대책이 시급

전성인 : 근로자의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고용돼 있는 사람, 또 하나는 그 안에 못 들어간 사람, 즉 실업자나 또는 불안정하게 고용돼 있는 비정규직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용돼 있는 사람의 경우 노조가 있건 없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고, 그렇다면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임금인상을 자제하거나 일자리 나누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청년실업자나 해고가 임박한 비정규직 근로자 같은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뒤를 돌아볼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쪽은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김종인 : 그건 사회적 긴장의 문제로 봐야지, 노사 문제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문제는 정부가 실업대책을 강구해야지요.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고용이 축소될 수밖에 없고 신규 고용은 좀체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이걸 누가 해결할거냐, 정부의 몫입니다. 정부가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생존을 보장하는 길을 제공해야죠. 지금 정부가 목표가 부정확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런 사람들의 생계대책을 세우는 게 오히려 경기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어

전성인 : 노동문제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사실상 거의 다 풀어줬습니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종인 :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보면 경기가 어려우면 무조건 부동산을 구원투수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90년대 초에) 부동산 투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 한국에 다시 한 번 투기가 나면 한국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IMF 위기 이후 2001년 미국에서 9.11사태가 터지니까 11월에 경기활성화 차원에서 경제대책을 발표했는데, 이게 사실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강만수 장관이 발표한 위기 대응 정책도 전부 부동산 규제완화였죠.

다른 나라들을 보면서 경제정책자들이 반성할 필요가 있는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9.11사태가 발생하니까 부시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금리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은행들이 대출도 늘려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싼 금리로 집을 사게 만들었어요. 그 집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가니까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거품이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 아닙니까.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어요. 거품이 커질수록 꺼지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이 따릅니다.

미국이 지금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또 하나의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지 않나 걱정도 됩니다. 9.11 이후 처방 방식과 거의 비슷한 방식을 지금 FRB 의장인 버냉키가 하고 있어요. 버냉키가 1930년대 디플레이션을 연구한 전문가라지만 현 경제 여건은 당시와는 다릅니다. 미국에서 독자적인 신기술이 개발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일본식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어요.

우리도 부동산 바람이 불면 투기가 일어나서 경제가 좀 나아지지 않겠냐 기대하는 것 같은데, 일본은 90년대 초 경기를 활성화한다면서 공공부문 투자를 늘리고 전 국토를 개발하는 식으로 했는데, 부동산은 안 오르고 경기는 회복이 안 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과거 60-70년대에 우리가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늘려 경제효과를 봤다고 하지만 같은 정책으로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면 곤란합니다. 산업화 초기에 도로 등 기반시설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이미 다 포화상태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다가 일본이 90년대 겪은 장기불황에 빠지면 이후에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는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국제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위기로 수출 수요가 확 무너졌습니다. 또 국내는 97년 이후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서 중산층이 무너져 소비가 늘어날 수 없어요. 수출이 줄고 소비가 주니까 투자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게 공공부문 수요인데, 이걸 통해 다른 수요를 모두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는 과거 관행에 사로잡혀 부동산으로 경기부양하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고 기대하는 것 같은데, 물론 다른 선택이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너무 거기에 의존하지 말고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솔직히 찾아내서 처방해야지만 한국경제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공공부문에 돈을 집어넣는 것은 짚불을 태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돈 넣을 때만 반짝 하고 끝입니다. 구조의 문제를 경기 문제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조적 모순을 경기부양책으로 해결하겠다?

전성인 : 정말 여러 가지 한국경제정책 운용의 모순이 집약돼 있는 게 부동산인 것 같습니다.

김종인 : 난 우리나라 경제정책 수립가들이 지난 30년의 모습을 한번 냉정히 분석해봤으면 해요. 그래서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정책을 썼으면 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10년을 주기로 위기를 겪지 않았습니까? 겪을 때마다 상황이 똑같아요. 근본적인 구조를 바꿀 생각을 안 해요.

전성인 : 정책의 일관성 문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정부는 집권 초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경제정책을 펼치는 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종인 : 환율이 최근 40% 가까이 평가절하 됐습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 환율이 40% 절하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체질이 취약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걸 솔직히 인정하질 않아요. 2007년 말 한국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 달러가 넘어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1만2000달러로 줄어든 것입니다. 원래 목표인 4만 달러는 언제 달성할 것입니까. 정책은 일관되게 얘기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면, 거기서 신뢰가 상실됩니다.

지금 한국은행이 고민스러울 것입니다. 국제사회 나가면 각국 총재랑 어울려서 얘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지...지난 1월에 물가상승률이 3.7%였어요. 그런데 지금 기준금리가 2.0%면 이미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셈이죠. 그런데도 금리 인하를 하겠다고 합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2.5%에서 2.0%로 낮췄습니다. 거기는 물가상승률이 1% 이하로 떨어졌어요.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2.0%를 마지노선으로 얘기하더라구요.

이번 국제 경제위기에서 어느 나라가 경제운용을 함에 있어 정책을 제대로 잘 코디네이트 해서 이길 것이냐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위기는 '국제' 경제위기이지만 해결은 각 나라가 독자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가 경제적인 취약성이 적은가를 볼 것입니다.

전성인 : 이번 위기는 각국 정부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는데, 우리나라 경제팀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맞는 제대로 된 시험장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동안 위기가 오면 일단 적당히 아편을 써서 시간을 벌고 있다가 우연히 외부 여건이 호전되면 거기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선 국제경제가 쉽게 호전될 가능성이 없고, 다음으로 부동산 거품 자체가 커져 있는 상황이라 이런 상태에서 부동산 경기를 또 부양하면 그 효과가 단순히 안정제를 투여하는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종인 : 동감입니다.

한국은행, '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로 돌아가려나

전성인 : 마지막으로 중앙은행 애기를 해봤으면 하는데요, 최근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한은법을 바꾸면서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유일한 목표로 채택했습니다. 이게 밀튼 프리드만 식 아이디어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단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게 정책투명성이나 신호의 안정성에서 바람직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한은과 정부 모두가 내심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은 입장에서는 금융감독 권한의 회복을 통해 97년에 잃어버린 권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비원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감독권이 없다는 것을 탓하고, 반면에 감독권을 좀 주면 모든 이슈에 타협해 버립니다. 대표적인 게 자본시장통합법 아닌가요.

정부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은이 물가만 보는 게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물가안정목표제 때문에 섣불리 금리를 낮출 수 없다고 하니까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높아서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높였죠. 그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금리를 낮추기 시작해서, 지금은 만사 포기하고 금리를 낮추는데 올인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명시적으로 언약한 물가안정목표를 못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물가상승률 3%를 내걸었습니다. 물론 ±0.5%라는 여지를 좀 남겨두기는 했지만, 지난 2007년에는 물가가 2.5%, 작년에는 4.7%였습니다. 그러면 올해 3% 아래로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망이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물가가 떨어진다는 전망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한은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 돈을 찍어내는 게 시장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라는 면도 있어서 생색을 내고 있는 측면도 있죠. 이런 배경에서 한은의 목표 중에 경제안정 목표를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스러운 게 중앙은행이 급할 때 경제안정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죠. 중앙은행이 지금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영란은행이 경제위기 때 은행들에게 돈 빌려 주면서 위상을 찾으면서부터 입니다.

그러나 그런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나마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붙들어왔던 제약을 허물어 버리고 한은이 예전 개발연대 때처럼 무작정 돈 찍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더이상 단기적 처방으로는 안 된다

김종인 : 어느 상황을 전제로 제도를 고치는 발상을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을 전제로 해서 제도를 고치려면 모든 게 비정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은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물가와 관계없이 통화량이 증가해도 되는 상황인데,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은법을 고치면 이전처럼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가 될 가능성이 커요. 이성태 한은 총재가 그동안 논리를 갖고 자기 방어를 했는데,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정부 논리대로 가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고 나가야 되니까, 양심의 갈등은 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 방법으로 정부가 강제로 자기자본을 증진시키는 공적자금 투입이 안 되니까 한은이 70년대처럼 한은특융을 해주는 식으로 은행에 돈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나 서민들 입장에서는 금융기관에 돈이 있어도 대출이 안 되니까 22조가 어디 갔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안정화 기능까지 가져야 한다는 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기적 생각에서 한다면 몰라도 모순된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전성인 : 이 정부의 모순의 핵심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한 것입니다. 참여정부 때문에 경제가 잘못됐다면서 참여정부 때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을 지낸 사람을 새로운 경제팀 수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가 압축 성장 코스트를 치룰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한국경제는 비유하자면 지금 애가 잘 안 커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놓아서 인위적으로 키워놨더니 키는 큰데 뼈도 튼튼하지 않고 부실해서 휘청휘청 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 대응은 체질을 바꾸고 전체적으로 튼튼하게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 휘청휘청할 때마다 단기 처방을 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죠.

금융허브, 5년전에 만들었으면…

또 현재 우리 금융이 안고 있는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별개입니다. 미국의 파생상품에 우리 금융기관이 뛰어 들어 발생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포럼 회장 등 저명하다는 경제전문가들이 10년 전부터 '금융만이 살길이다, 미국의 금융제도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역동성이 강하니까 금융허브가 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해왔어요. 금융허브를 만들려면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부실을 키워온 것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5-6년 전에 금융허브를 만들었으면 이번에 아이슬란드처럼 됐을 수 있습니다. 여건과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명심에만 사로잡혀 일을 추진하면 실패합니다.

얼마 전에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 청문회를 보니까 장관 후보자가 "본인이 금융감독위원장일 때가 대한민국 금융의 황금시대였다"고 주장하더라구요. 그 '황금시대'가 오늘날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혀 없어요. 그때 우리가 남의 나라 흉내 내면서 금융감독을 허술히 하고 금융허브 한다고 외형경쟁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황금기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이런 것들이 모두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현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좀 회의적입니다.

물론 한 가지 바뀐 것은 강만수 경제팀은 금년 경제성장률을 3%로 잡고, 누구도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얘기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새 기재부 장관이 -2% 성장을 예고했습니다. 그나마 정부가 숨 쉴 공간은 확보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선결과제입니다.

양극화 심화로 저소득층 이미 한계에 봉착

전성인 : 한국은 과거에 정말 운 좋게도 대외적 여건의 호전에 의해 경제위기를 해결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행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종인 : 한국경제가 1970년대부터 10년에 한번 꼴로 위기를 겪었는데, 그 때마다 국제여건이 호전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별로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올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국제여건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내년에 우리가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가 중병이 걸렸는데 대강 이런 약을 쓰면 괜찮을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모면하고 넘어가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김대중 정부가 99년도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했는데, 그때 대충 덮고 넘어간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된 것 아닙니까. 이런 잘못을 또 겪으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요. 쓸데없는 희망과 욕심을 버리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현 위기 상황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경제정책이 안고 가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양극화가 계속 심화됐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의 경제에 대한 고통이 더 심화될 게 분명합니다. 아직까지 크게 확산 안 됐는데, 올 상반기 지나고 하반기에 가면 피부에 닿는 고통이 심각할 것입니다. 지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규모를 놓고 정치권에서 옥신각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보장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어요.

전성인 : 그런데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또 다른 차원의 퍼주기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인 : 기재부 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역성장이 예상되니까 추가경정예산을 짜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방향 자체는 맞다고 봅니다. 다만 추경 속에는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사전에 반드시 계획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합니다. 정부 재정이 필요한 부문에 시기적절하게 투입돼야 하는데, 지난해 짠 올해 정부 예산을 보면 4대강 살리기가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이었습니다. 이건 경제위기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하려고 했던 사업입니다.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전 세계가 바라는 게 1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소비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다 어렵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각에서 내수를 증진시켜 수출을 보완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무리입니다. 우리나라 시장이 인구 5000만도 안 되는 협소한 시장인데다, 지금은 양극화로 소득 편차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현 상황에서는 고소득층이 소비를 늘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저소득층은 한계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저소득층의 생계라도 보장해줘서 세계경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견딜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제조업을 버리자고?

전성인 : 내수부양정책을 많이 운위하는데 핵심은 소비 진작입니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소비시장이 있을 경우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도 소규모고 구조도 양극화된 상황이라 내수 진작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의 내수부양은 진정한 의미의 소비수요 진작보다는 돈 넣고 반짝 경기가 좋아졌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건설경기 부양으로 간 것 같습니다.

주제를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앞에서 금융허브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이들은 금융을 현대적 의미의 서비스업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이 사실상 사양화됐고, 그러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이냐, 금융 밖에 없지 않느냐, 금융이라도 잘하자, 이런 주장을 합니다.

또 최근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면서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의 상황이 어렵습니다. 전체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제조업과 금융업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우리가 제조업을 버려서는 못 삽니다. 금융업은 우리의 여건을 보면서 생각해야지요. 대한민국 같은 경제 규모에서 국제금융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을 금방 일으킬 수 없어요.

산업정책에 있어 경쟁력만 고려할 수는 없어요. 농업이 경쟁력이 없으니까 농업은 다 없애버리자, 1년에 3-4억 달러 들이면 쌀을 사먹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세계경제에 이상이 생겨 교역이 중단되면 당장 식량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지만, 이를 다 해체하고 금융업 등 서비스업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영국이 제조업이 쇠잔하게 되면서 금융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금융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았어요. 그런데 지금 갑자기 금융위기가 닥치니까 국가부도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국가 권력과 비슷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진 기업집단들이 있습니다. 국가 속에 국가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런 대규모 기업집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정책적으로 짚고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4800만 국민이 몇 개의 기업집단에만 의존해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지금이야 영원히 갈 거 같지만 개인 기업은 언젠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미국의 씨티뱅크, GM,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이런 기업이 저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나요.

역대 대통령 중 '기업 프렌들리' 아닌 대통령이 있었나

전성인 : 국가 속의 국가를 만드는 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하셨는데, 현 정부는 경제위기를 핑계로 이런 재벌체제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는 금산분리 완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다 하면서 분주합니다. 이를 경제살리기로 포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김종인 :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기업 프렌들리를 얘기하는데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기업 프렌들리가 아닌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경제 때문에 기업 프렌들리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전반적인 기업의 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원래는 시장친화적(market friendly)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과 개별 기업들의 상황을 봐주는 기업 프렌들리는 다른 얘기입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은 경제구조를 왜곡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이걸 막으려면 어느 정도 체제가 잡힐 때까지 규제가 필요합니다.

전성인 : 오히려 과거에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았습니다. 업종전문화로 주력 업종을 정하라고 하고, 또 이런 업종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여신바스킷제로 돈을 쓰는 것을 제한하고, 재벌들이 계열사를 너무 많이 거느리지 못하게 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지금 와서는 거의 다 없어졌죠.

김종인 : 기본적으로는 상호출자, 순환출자 때문에 구조 개혁이 안 됩니다. 다 엉켜 있어서요.

전성인 : 소유 지배구조 관련 주식을 팔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금산법 파동을 보면 삼성이 명백하게 법을 위반한 것인데, 맨 마지막에는 특정 대기업이 망하면 어떻게 하냐, 기업 본부가 홍콩이나 미국으로 가면 어쩌냐, 이런 얘기가 나오고 결국 법을 삼성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규칙이 자꾸 왜곡됩니다.

김종인 : 정책을 다루는 관료들이 국가가 할 일과 개인 기업이 할 일을 식별 못 해서는 안 돼요. 1952년에 GM 사장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면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나라도 최근에 이와 유사하게 '삼성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세계경제 위기가 개인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나라 전체가 의존하는 구조를 가져가서는 안 되죠. 오늘날 GM에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한 기업의 흥망성쇠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처럼 절제가 잘 안 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규제를 다 풀면 안 됩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면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무한 자유 경쟁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의 무절제한 경제정책을 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경제로 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둔한 일입니다.

큰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경제에 핑계 대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풀어주면 경제가 잘된다고 하고, 단편적인 관료들은 쉽게 규제를 풀어줍니다. 이런 걸 보면 미국에서 60년대말 닉슨이 집권하고 밀튼 프리드만의 시카고 학파가 잠시 득세할 때가 있었는데, 당시 폴 사무엘슨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무엘슨이 '정치인들은 복잡한 얘기를 하면 들으려 하지 않고 프리드만처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한 얘기, 즉 구호에만을 솔깃해 한다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경제는 원래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 논리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가 없어요. 정부는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각 나라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는 게 시장원리에 맞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아니까 냉정하게 판단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 관료는 전혀 상황 인식을 못하고 지금도 도그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소신 있는 공직자가 나와야"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진로 <하>

CEO 대통령. 경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장점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지난 몇년간 효율성과 경쟁력이 최대 가치로 인식되면서 장관, 대학총장, 자치단체장, 심지어 대통령까지 CEO 경험과 마인드는 중요한 자질로 평가받았다.

결국 한 건설사 CEO를 지낸 사람이 정권을 잡았다. 그가 과연 경제 살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집권 1년이 지난 현재 긍정적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훨씬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국민경제를 살리는 것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평가했다. 애당초 특정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CEO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대통령은 서로 안 맞는 조합이었다.

이처럼 공익을 추구하는 자리인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권력을 잡은 정부가 시장의 규율하는 '심판'으로서 역할을 잘 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 김종인 박사는 이익집단과 연결되지 않은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관료, 최고 권력자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투철한 정치인 등을 현재 왜곡된 한국경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2월 11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다양성 부족한 한국 경제학계

전성인 : 경제철학이나 경제정책 운용의 기본 베이스에 대한 얘기로 왔는데, 정확한 상황 판단, 현실적인 태도가 경제정책에 있어 중요합니다. 경제정책에 있어 유일하게 중요한 도그마는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가라는 큰 생각이 중요하지, 나는 무슨 학파니까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영국은 79년 대처가 집권한 이후, 뉴질랜드는 8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단까지 몰고 갔던 나라들입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공무원도 다 계약직이고, 중앙은행 총재도 계약제로 고용해서 목표를 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식으로 극단까지 갔던 나라입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고요. 영국은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유화와 민영화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것을 도그마의 추구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시대상이 이런 것을 요구해서 이를 포장했을 뿐이라고 봐야 할지, 이들 국가의 경제운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종인 :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오랜 정당정치 경험이 쌓인 나라들은 각 정당이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이에 맞게 자기 정강 정책을 내놓고 표를 얻고 집권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지지했으니까 정책을 실현합니다.

하지만 영국이 아무리 대처 정부가 신자유주의로 갔다지만,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해서 페이비언 소셜리즘(의회 사회주의), 케인지안, 하이에크, 신자유주의까지 혼재돼 운영되는 시스템입니다. 대처가 의료보장제도를 없애지도 않았고, 연금제도도 손대지 않았어요. 대처 당시 민영화도 보면 국민주 형태로 추진했지, 특정 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독일도 사민당(SPD)이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처음에 채택했다가 57년에 기민당(CDU)이 선거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사민당은 59년 이런 도그마적 정강정책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국유화 노선을 포기했어요.

이들 국가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다양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계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한 시대의 유행에 따라 그리 확 쏠립니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오는 압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도그마에 사로잡혀서는 끌고 갈 수가 없어요.

우리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최근에도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원래는 얼마만큼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조짐을 보였는데, 이번 경기대책의 효과로 어느 정도 축소됐다,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해야 신빙성을 갖고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장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3% 경제성장을 얘기하다가 IMF가 -4% 경제성장을 발표하니까 그 중간쯤인 -2% 성장률을 얘기하는 식으로 해서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가 없어요.

현재 국제경제 상황이 금방 호조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독일은 올해 -2.25% 경제성장을 정부가 예고했어요. 원래는 -3%가 예상되는데 정부의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0.75%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내년도 금년 수준 이상 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전제 없이 내년은 무조건 제일 빨리 성장한다고 하는데, 이런 단순논리로는 경제정책이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규제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

전성인 : 정치인들에게는 간단한 메시지만 잘 전달된다는 얘기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최종의사결정권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얘기를 해도 마지막에는 구호화된 짤막짤막한 도그마들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규제를 완화해야 기업의 활동이 잘 된다, 성장과 효율이 우선이다, 이런 식의 몇 가지 단순한 메시지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정책의 생성이나 통제의 구조를 보면 우리가 이제는 정부 내 위원회 조직도 많이 있고, 정부 출연 연구기관, 국회 내 연구조직, 정당 내 연구소 등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정책 생성은 아직도 관료, 그것도 장관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김종인 : 관료들이 도그마로 문제를 왜곡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기업과 관료들은 마치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이뤄지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과거 60, 70, 80년대에는 규제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투자가 잘 되고 성장이 잘 됐습니다. 원래 기업들은 돈이 된다면 규제가 있어도 투자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규제를 풀어도 돈이 안 되니까 투자가 안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규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합니까? 이참에 경제를 핑계로 방해가 되는 규제를 없애야겠다는 계산 같아요.

거대 기업들이 '나는 특이한 존재야, 그러니까 룰을 안 지켜도 된다'는 특권의식에 기반해 규제완화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이에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시장경제는 시장의 규칙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또 국가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심판입니다. 심판이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지키도록 해야지, 게임 규칙을 자꾸 없애면 그 경기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전성인 : 단순한 메시지만 최종 의사결정자에게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걸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이 정책의 단점은 이런 점이 있다고 얘기해주는 기능이 정책 생산 과정에서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점점 그런 사람들을 최고 통치자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왕조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사간원이 있었고, 군부정권인 박정희 시절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있어 특정 사안을 놓고 상호 견제하면서 경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97년 위기가 커진 데는 공룡 재경원이 모든 권한을 쥐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서 그렇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비단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재벌기업에서 총수 경영체제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에서 총수가 자동차 사업을 해야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결국 그룹 전체에는 엄청난 손해를 끼쳤습니다.

원래대로 따지자면 이런 제어장치의 역할을 정치권이 하거나, 행정부처 내에서는 위원회 조직이 해야 하는데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면 학계가 그런 역할을 하든가 해야 하는데, 사실 학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굉장히 한계가 있습니다.

입법도구가 된 여당

김종인 : 위원회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정부가 하는 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든 것들인데 제 기능을 할 리가 있습니까.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정당입니다. 정당이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제일 많이 합니다. 여당일수록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당이 집권당으로 책임감을 갖고 국민 의사를 수렴해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줘야 하는데 우리 여당은 그런 기능이 없어요. 오로지 최고 통치자의 눈치만 보고 그 사람의 판단은 신성불가침처럼 따라가는 데 급급합니다.

전성인 : 그렇습니다. 국회에서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입법화하는 도구 비슷하게 기능할 뿐입니다.

김종인 : 자기 정당의 토론과정을 통해서 정책 방향이 결정돼야 하는데, 우리는 토론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민주화 20년이라고 하는데, 형식상 민주화는 됐지만 내재화가 전혀 안 됐습니다.

정부의 관료는 중립적인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 얘기를 나쁘게 듣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관료는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까요. 우리나라의 메커니즘이 그렇습니다. 윤증현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소득세와 법인세를 전면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뭘 검토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면 새로운 것을 뭘 해야 하니까 툭 던지는 수밖에 없는 거죠. 소득세 전면 검토라는 게 소득세 감세 밖에 없는데, 지금 시국에서 감세해야 경기부양 효과가 없습니다. 법인세 때문에 투자가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어떤 정책을 하면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해야지, 막연하게 다른 나라가 우리보다 세율이 싸니까 감세를 해줘야 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정책이 성공 못 합니다.

사익 추구하는 CEO, 공익 추구하는 대통령

전성인 : 정책 생산 구조와 관련해 정당의 역할을 말씀했는데, 결국 사람의 문제로 간다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사람이 옆에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장관이 무슨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 정책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것이면 대통령의 참모들, 청와대 경제수석이 막후에서 정책 조정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종인 : 그건 당연합니다. 청와대가 그런 기능을 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사람으로 보면 머리죠. 이게 작동을 잘해야 몸이 움직입니다. 미국도 백악관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미국체제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장관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이 없어요.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이 제대로 돌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안테나를 꼽고 행정부 전반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통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할 수가 없죠.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장관이 되는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관료 출신이라지만 거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자리에 집착하면 잘할 수가 없어요. 국회의원이 다음 번 공천을 걱정하고, 장관이 자리보전할 생각을 하면 바른 소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도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원이 2선, 3선하면 자기가 뭘 위해서 하는 것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미국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미국 의회에서 구제금융법안을 표결에 붙였는데 공화당 상원의원 2명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그런 정도의 확신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나라가 흥하고, 반대로 자리보전하고 그때그때 문제 안 생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특정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공직에 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한동안 우리나라의 CEO가 최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졌어요. CEO 대통령, CEO 장관, CEO 시장...실제 특정 기업의 사장을 하던 사람이 특정 부서의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어요. 이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기여했습니까. 정부라는 공익을 다루는 기관과 개인기업의 이윤 추구는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언론마저 똑같이 밤낮 CEO 대통령 떠들어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언론도 경제정책을 하려고 하잖아요. 최근 대표적인 일이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 검토할 때 특정 언론이 나서서 왜 빨리 안 하냐고 부채질을 했었죠.

자리 욕심만 있고 비전은 없는 공직자들

전성인 : 그 언론이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에 반성문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공직자가 갖춰야할 자세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덕목은 제도적으로는 공직자 윤리법을 통해 규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서도 검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사 검증 과정을 보면서 물론 땅 투기, 병역 문제 등도 기본적인 도덕성의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정부에 들어가서 공익과 사익을 구별해서 국가를 위한 정책을 펼 것이냐가 중요한 검증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공직에 있다가 밖에 나와서 직접적인 이권과 관련된 단체에 있다가 또 공직에 가고...이런 회전문 인사를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 졌지만, 현 정부의 인사를 보면 아직은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법,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직을 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개인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직에 발탁된 이들 중에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 '내가 이런 자리에 갈 거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에 실수했다'고 변명하기도 하는데, 평소 그 사람의 생활신조가 어떤가, 사람을 임명할 때는 그런 것도 보고 골라야 합니다. 모든 게 편하고 적당히 하고 살았으면 공직을 탐내면 안 되고, 자기가 추구하는 바가 있으면 그에 맞게 일상을 규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을 보면 흑인으로 하버드 로스쿨 다녔어요. 본인이 원했으면 뉴욕의 최고 로펌에서 돈 많이 받으면서 최상류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사회운동을 위해 돈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인생을 살 때 그것에 맞추어 준비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가 뭐냐,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문제들을 고쳐야겠다고 고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행하게 그런 대통령이 이승만, 박정희 이후에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석하게 생각되는 것은 60년 헌정사에서 국민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 존경하는 원로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을 통해 지금 세계 13대 경제대국이라지만 사회가 갖춰야할 하부 구조는 아직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프랑스가 저 정도로 발전한 이유는 드골 덕분이라고 봅니다. 드골이 2차 대전 이후 개선장군으로 잠깐 대통령을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후 프랑스의 50년대가 정치적 혼란기였습니다. 드골은 당시 정치상황을 보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50년대 중반이 지나고 연로하게 되자 '조국이 나를 부르지 않는구나' 하는 체념 상태로 있다가 57년 알제리 사태가 나서 다시 58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고, 오늘날 근대 프랑스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물론 나중에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하게 퇴진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의 마지막 위인으로 드골을 뽑아요.

우리나라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지금 보면 장관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교수 중에도 많고, 관료들도 1급만 되면 장관을 꿈꿉니다. 그런데 막상 장관을 시켜 놓으면 뭐를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장관이 되면 일상적인 관리 이외에는 다른 걸 안 합니다. 경제정책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행정능력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상력과 상황에 따른 분석 능력이 있어서 자기 영감에 기반해 새로운 정책을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정능력만 있으면 되는 걸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의 세계 경제위기는 경제정책에 있어 새로운 각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경제는 놔두면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죠. 대통령들도 관료들 데리고 가면 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97년 외환위기 때까지는 그동안 축적한 것을 까먹을 여유라도 있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양극화가 심화돼서 이제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이번 위기에는 서민층에서 받는 충격이 클 것입니다. 이 충격으로 정치권이 각성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조건

전성인 : 박정희 정권 말기 1978년 집권 여당이 1.1% 지던 때가 제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때였습니다다. 그 전에 2-3년에 걸쳐 여러 가지 사전적 징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징후가 보이는 것 같아요. 용산참사를 보면 일종의 데자뷔(deja-vu)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사상자는 훨씬 적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집권 여당이 이런 메시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김종인 : 예전에 박정희 정권 때 차지철은 79년 부마사태 이후 2만 명만 죽이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권력을 잡고 있으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이라는 착시 현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현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권력자들의 오만은 결국 국민 힘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제대로 된 비전도 없이 5년 임기 채우고 그만 두는 형편인데,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대통령은 첫째 탐욕스럽지 않고, 둘째 주변이 간편하고, 셋째 이익집단 하고 연결고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왜곡된 경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성인: 다음에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끝)

김종인은...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서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린다. 또 '김종인 조항'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7년 헌법 개정을 논의할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주도해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 도입에 대해 정치권 및 재계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김종인 의원이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김종인 조항'은 개헌 논의가 있을 때마다 재벌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는 조항이다. 이 짧지만 결정적인 문구를 헌법에 넣으려고 하는 사투를 통해 김 전 수석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이자 1960년대 초 야당 통합을 주도한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가인의 비서실장으로 대학시절부터 정치를 접했던 그는 귀국 이후 서강대 교수를 거쳐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 보사부 장관 등 경제관료이자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권력 내부와 깊게 조응했지만, 그는 여느 관료나 정치인과는 달리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행보가 '김종인 조항'에 담긴 내용을 실현하려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그는 재벌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의 매각을 유도한 '5.8 부동산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성인은...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스승인 조순, 정운찬 교수 등과 <경제학원론>을 함께 냈다. 전 교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과 함께 정운찬 전 총장이 특별히 아끼는 제자다. 금융이 전공인 그는 대표적인 '금산분리론자'이다. 4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학자로서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전홍기혜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17113045&section=02

Posted by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