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물로 돌아간 물고기
30년만에 돌아온 현장기자로서 느낀 울분…
김 훈 / 작가․언론인
1948년 서울 출생/고려대 영문과/한국일보 기자/시사저널 편집장/ꡐ칼의 노래ꡑ로 동인문학상 수상/한겨레신문 기자(부국장급)
나는 1973년에 신문기자를 시작했다. 2002년 봄에 나는 다시 현장기자로 돌아갔다. 나는 54세가 되었다. 나의 결심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기자이므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거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고기가 물로 돌아가고, 새가 숲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살았다. 나는 관념과 추상의 세계 속에 빠져 있었다. 책읽기의 삶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길은 이 세상의 길바닥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불가피한 모순과 갈등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듯 세상을 읽을 수는 없고, 인간의 현실이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닐 터였다. 그 설명되기 어려운 세상의 바닥에 나는 내 몸을 밀착시키기로 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표를 썼고,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다. 나는 나의 좌충우돌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추호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내 여생의 앞날에 얼마나 많은 오욕과 파란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오욕과 파란이 너무 많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운명으로 예비된 오욕과 파란을 나는 감당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으로 돌아간 첫날부터 부시 방한 반대 시위가 있었고 공기업노조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와 근로조건 개선을 소리치고 있었다. 24시간 맞교대를 철폐하라는 외침이었다. 30년 전에 외치던 구호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24시간 맞교대는 이념이나 노선과 아무런 관련 없이, 인간의 몸이 받아낼 수 없는 노동형태다. 이 단순명료한 사안이 30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 사회는 앞서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고 있었다. 현장으로 돌아온 나는 들끓는 울분을 느꼈다. 그 울분이 내가 현장으로 돌아온 보람이며, 내 삶의 내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