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interviewe

and writing 2004. 9. 25. 00:59
다른 대상보다 정치인 인터뷰 기회가 많았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적인 인터뷰이는 한화갑 의원이다. 이유? 정치인으로서 아쉬운 대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간극이 가장 커서. 만나기 전엔 DJ ‘꼬붕’, ‘가방모찌’라고만 생각해서 별다른 정치의식이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는 전혀 달랐다. 나이에 비해 생각도 열려 있고, 정치의식도 높았고, 진보적이었다. 혼자서도 능히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DJ에게 가려지면서 생겼던 억울함이 있을 법한데도, 수십 년간 자신의 방식으로 다뤄낸 인간적인 성숙도 느껴졌다. 거의 종교에 가까운. 이인제 의원은 말 그대로 ‘화신’이었다. 일반인으로 치자면 욕망의 화신, 정치인으로 치자면 야망의 화신. 한곳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일관성은 인터뷰하는 동안 한편으론 매료될 수준이다. 정치인에게 정치적 야망이 나쁜 게 아니라고 본다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을 받쳐줄 콘텐츠가 없어서 휑하긴 하지만. 서너 시간 인터뷰한 뒤에 “이야!” 했었다. 정치인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냐, 하면서. 모든 세상이 자신의 야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일관성, 그거 대단했다. 야망은 그에게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욕망이 맞는 것 같다. ‘화신’이라고 부를 대상에 이인제만큼 어울릴 사람은 없다. 박근혜 대표도 인상적이다. 그런 삶을 산 사람은 전 지구인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자신이 테니스를 치는데 취미생활도 단순한 개인적 즐거움으로 즐겨선 옳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야말로 ‘국민교육헌장’의 현신이라는 생각이다. 일반적인 정치인이 그랬다면 인상적이지 않았겠지만, 박근혜의 그 말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23세에 퍼스트레이디가 돼서 27세까지 그 역할을 했다. 스물셋에 뭘 알 수 있겠나. 집안에서 아버지가 아닌 대통령, 절대적인 존재와 살면서 아버지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바라봤을 거 아닌가. 아버지가 곧 국가이고 가족인 가치관. 한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존재였지만, 그는 사람들 누구나 겪는 일상, 결혼, 연애, 좌절, 직장생활, 꿈을 쫓는 것 등등을 전혀 겪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20대 때 만들어진 가치관에 모든 게 수렴되는 거다. 국가와 연애했고, 국가와 결혼한 거다. IMF 때 국가가 망했다는 얘길 듣고 울었다는 고백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에 공주가 존재한다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종합적인 면모로 한 명의 공주를 뽑으라면 단연 박근혜다. 그는 평민의 생활을 모른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몸에 배어 있는 굉장한 ‘애티튜드’가 있다. 그의 모든 논리는 국민교육헌장에 있다. 물론 그 안에 콘텐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여러 번 만난 인터뷰이다. 그에게 상고, 비주류 콤플렉스를 말하는데, 그에겐 그런 콤플렉스 없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섭섭해할 정도로 드라이하고 공평무사한 사람이다. 가끔 콤플렉스로 번역되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콤플렉스가 아니라 답답함의 토로다. 자수성가형은 대부분 자기가 룰을 세운다. 당연히 보통 사람들의 익숙한 관례나 관습 같은 걸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 점 때문에 불편해하거나, 어떤 사람들은 불안해할 수 있다. 늦깎이로 스스로 학습해서 룰을 세우고 플레이하기 때문에 주류적이지도 않고 탈권위적이다. 관습, 관례에서 나온 게 권위이고 힘인데, 그런 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자신은 공평무사한데,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매체가 끼어들어서 오해를 낳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거다. 국민을 직접 설득하려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좋은 쪽으로 보면 나쁜 관습과 관행을 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트러블이 생기는 간극까지도 감안해서 조율하는 것도 대통령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김문수 의원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왜 하필 한나라당에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워낙 컸던 터라 인상에 남아있다. 질문에 대한 변은 다양했다. DJ와 YS의 차별성이 없었다, 광주항쟁 이후 곧장 6·10 항쟁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7년이나 지나 너무 늦게 일어났다, 민중당도 안되더라, 동구권이 무너지더라 등등. 가장 길게, 7~8시간 동안 인터뷰한 경우인데, 인터뷰 뒤에 그 이유를 다시 정리해 봤더니, 그 모든 변들과 관계없이 ‘어쩌다 보니까 그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역사의식 등등으로 어떤 국면에서 결단을 내릴 것 같지만 사실은 일반인과 똑같더라. 또 하나,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김문수 의원 역시 생활인이라는 점이다. 정치도 직업이고 생활이다. 그런 상황에서 딱히 깨고 나올 이유도 없는데 왜 한나라당에서 나오려 하겠나. 그런 걸 생각하면 연민도 들고 이해도 됐다.
-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뮤지션 한대수. 그는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한 존재이고,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캐릭터다. 당연히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좋은 글감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쓸 얘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솔직하고 소박했다. 소년 같았다. 어떤 질문에도 답변을 ‘꼬불치지’ 않고 시원스런 직설로 다해주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는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한국에 들어올 때 생활하는 오피스텔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그의 거처엔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만 갖춰져 있었다. 질문과 답변 사이의 틈이 없을 정도로 단숨에 튀어나오는 직설들이 왜 한 치의 거리낌도 없었는지 느끼게 해준 장면이었다. 강금실 전 장관과 소설가 김훈도 인상에 남아있다. 김훈의 경우 굉장히 불편해하면서도 인터뷰는 잘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면 옮겨 적을 게 굉장히 많은 인터뷰이다.
- 남재일(전 <중앙일보> 기자, 고려대 강사)

아무래도 우여곡절이 가장 많았던 인터뷰이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이유로 치면 단연 소설가 조정래다. 첫 인터뷰 섭외 때 그의 입장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였다. 질문 50개와 ‘조선과 동아를 한묶음으로 묶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요지를 적어 팩스로 보냈다. 1시간 후 연락이 왔고, 다음날 확답했다. 깔끔했다. 인터뷰 중에도 본인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들, 예를 들면 “당신은 친북 공산주의자인가?”라는 사상 관련 질문들을 던졌음에도 깔끔하게 답했다. 모두 알다시피 그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평생을 바쳐 대하소설을 쓴 작가다. 인생에서 해찰하지 않고, 잡기도 즐기지 않고, 그야말로 소설에 일생을 바친 구도자 같은 작가다. 인터뷰 내내 그런 성실하고 한결같은 느낌은 떠나질 않았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균형 잡힌 사고와 솔직한 면에 관한 한 최고였다. 장관 취임 직후에 인터뷰하게 됐는데, 인터뷰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솔직담백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사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졌는데도 모두 답했다. 공직자들의 경우 인터뷰 이후에 어떤 내용은 쓰지 말아달라, 원고를 사전에 보여달라는 등의 구질한 요구들을 하는데, 강 장관은 그런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지면에 실릴 경우 난처해질 대목들이 있었는데도. 배우를 꼽는다면 박중훈이다. 일명 ‘딴따라’라고 불리는 연예인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책을 굉장히 많이 읽은 듯했고, 생각이 깊고, 답변은 비유가 좋고 논리정연했다.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여자팬들이 촬영을 하면서 주위가 소란해지자, ‘몇 만 명을 상대로 인터뷰 중’이라는 말로 스스럼없이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의외였다. 그의 또다른 면모. 인터뷰이들은 인터뷰가 실린 뒤 전화를 하거나 연락이 없거나, 크게 두 가지 행태로 나뉜다. 박중훈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황호택(<동아일보> 논설위원)

가수 전인권이 최고의 인터뷰이다.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 중 가장 천진난만한 캐릭터였으니까. 난 인터뷰를 많이 당했던 경우라 인터뷰이의 입장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약이라고, 인터뷰어가 어떤 팩트로 접근하는지 한눈에 보인다는 거다. 첫눈에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고, 저절로 마음이 열리는 인터뷰어가 있는 반면, 찰떡을 줘도 입을 열기 싫은 경우도 있다. 그런 경험을 속에 품고 인터뷰어로 나선 내 인터뷰 강령 1번은 다음의 것이다. 했던 질문 또 하지 말자. 물론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자료조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인권의 경우는 아무리 자료를 찾아도, 그의 무뚝뚝해 보이는 입술이 그날 따라 한여름 엿가락처럼 눌어붙은 건지, 아니면 인터뷰어들이 몇 마디 질문으로 때운 탓인지, 별다른 정보들이 없었다. 한결같이 그에 대한 강한 인상기만 뽑혀 나왔다. 전인권의 터프한 이미지 때문에 마음을 터놓고 다가간 인터뷰어가 별로 없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오해였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부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시작한 인터뷰어에게 이혼, 마약, 감옥 간 얘기 등, 별로 득될 것 없어보이는 얘기들을 경계심 없는 아이들처럼 술술 털어놓았다. 연예인들은 상대에 따라 사생활은 물론, 할 얘기 안 할 얘기 등을 서랍정리하듯 나눠서 하는 게 습성이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전인권에게 그런 식의 구분법은 이미 낡은 강령처럼 폐기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터뷰이로는 이홍렬도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인터뷰어에겐 행운에 가까운 인터뷰이. 그와 두세 시간 동안 인터뷰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질문도 없었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인사 끝내고 그가 던진 첫 코멘트가 이랬다. “배고플텐데 걱정 말고 얼른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그냥 듣기만 하면 돼. 나한테는 질문이 필요없거든.” 물론 그의 모든 얘기는 인터뷰에 필요하지 않은 생뚱맞고 쓸데없는 얘기가 아니라 인터뷰어가 뭘 알고 싶은지를 정확히 짚는 내용들이었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흐르면 방향만 다시 잡아주면 그뿐, 아무런 테크닉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쿨한 인터뷰로 기억되고 있다.
- 허수경(방송인)

소설가 이윤기 선생은 인터뷰 후 반응이 가장 좋았지만, 최고의 인상적인 인터뷰이는 아니다. 굳이 가르면 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인터뷰이이다. 이윤기는 일단,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말을 잘할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터뷰를 상대와 말을 주고받는 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면, 가장 묘미가 남달랐던 인터뷰이라는 거다. 레토릭이 워낙 뛰어나서 그걸로 승부하자면 밤을 세울 수도 있는 고수, 말 그대로 무림고수가 바로 소설가 이윤기다. 그의 또다른 특징은 자기고백을 잘한다는 거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얘기, 가슴 아픈 얘기, 자랑거리들을 그냥 던져도 되는데, 반드시 그 얘기를 하게 된 이유를 달아둔다. 논리적 뒷길을 열어놓는다고 할까. 공격당할 줄 알면서도, 모든 걸 다 받아주겠다는 태도로 임하는 탁월한 인터뷰이였다. 이어령 선생도 떠오른다. 그는 워낙 다변에 달변이라 말을 끊고 들어가는 사람이 없는데, 인터뷰하는 3일 동안, 말다툼은 아니지만 가히 토론에 가까운 인터뷰를 벌였다. 그의 특징은 그 다변과 달변에도 표현이 굉장히 좋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임했다. 가령 인터뷰 이틀째가 지났을 때는 이메일도 보내고,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지 못한 부분, 오해될 부분에 대해서 정교하게 터치했다. 어떤 점에서 굉장히 무례한 인터뷰, 이어령 선생 스스로 당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인터뷰라고 후평했지만, 대승적인 태도로 받아들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진중권의 경우는 대단히 명료하고 적확한 표현을 서로 골라 쓰느라 힘들었던 인터뷰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상대의 정교한 논리에 감명받는 스타일이다. 그 자신의 글 때문에 뜨겁고 열정적이고 과격한 사람이라고 오해받기 쉽지만, 거의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냉정한 캐릭터다. 자기 정돈도 잘 되어 있고, 자기 표현이 정확하고, 자기 모순이 별로 없는 캐릭터다. 어떤 점에서 이런 캐릭터는 인터뷰 재미가 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논리적 베이스에서 당대의 논객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남달랐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도 꼽고 싶다. 흔히 연세 높은 아줌마 작가로 생각하는데, 여성미가 뚝뚝 흐르는 단아한 스타일이다. 한편으론 열정적인 면모도 갖춘. 자택에서 두 번 인터뷰했는데, 한 번은 옷을 차려입고 나오는데 지퍼가 내려가 있었다. 너무 단정하고 빈틈없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워낙 강해서 그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다. 아, 선생도 사람이구나, 평생 자기 관리를 해왔지만 결국 사람이고 노작가구나, 그런 사람냄새가 좋았다.
- 이나리(<주간동아> 기자)

김창완. 그를 인터뷰하기 전까지 인터뷰라는 행위에 할당되는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장장 10시간을 훌쩍 넘겼다. 김창완을 만났던 인터뷰어들에겐 공통적인 기억일 수 있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대부분 술과 함께 이루어진다. 김창완은 배려심 많고, 난해한 책을 읽는 걸 즐기며, 생각도 깊은 사람이다. 당연히 어려운 얘기도 많이 한다. 그리고 솔직하다. 솔직함만으로 치면 비교를 불허하는 인터뷰이 중 한 명일 거다. 김창완과의 인터뷰 이후 새삼스럽지만 메모하듯 마음에 옮겨둔 인터뷰 방식이 있다. 인터뷰라는 게 두세 시간이 아닌 깊이를 전제로 한 긴 시간을 해야 상대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겠다라는 것, 인터뷰에도 이런 기쁨과 흥분과 재미가 있다는 것,‘술’이 인터뷰에 끼치는 긍정적 효능에 관한 것. 마음을 슬쩍 들었다 놓았던 인터뷰이는 유진박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던 그를 노보텔에서 만났는데 매니저가 동석한 상태라 분위기도 껄끄러웠고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러니까 어설픈 한국어와 어설픈 영어가 흐름을 무시하고 뒤엉키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느끼던 순간, 유진박이 자신의 곡이라면서 바이올린을 기타 뜯듯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느닷없음이란! 시간에 관한 노래였는데 노랫말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맞다, 딱 어린 레너드 코헨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방이 조용했고 한낮이고, 밖에선 바람소리만 들렸다. 그때 유진박이 물었다. “지금 밖에서 나는 소리 들을 수 있어? 혹은 안 들을 수 있어?” 그후 두 번 다시 유진박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그때 느낀 게 바로 ‘세상에 천재가 진짜 존재하는구나’였다. 그를 떠올릴 때면, 한국에 와서 매니지먼트 안에서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참, 김창완의 집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첫 인터뷰, 마루로 석양이 슬며시 스며들 때쯤 인터뷰어가 가수에게 던지는 가장 바보같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금까지 만든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봉숭아’라고 답하면서 오디오를 틀었다. 불꺼진 어둑한 마루에서 듣는, 거대한 볼륨 소리에 실려나온 그 비장한 멜로디와 가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인터뷰의 추억’이다.
- 황경신(<페이퍼> 편집장)

내가 생각하는 인터뷰는 공적인 만남을 가장한 사적인 만남, 그 접점이다.그 접점엔, 매우 퍼스널하게 다가가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활자화된다는 이유로 편한 감정과 이상한 긴장감이 공존하고 거기에 미묘한 기싸움까지 가세한다. 그런 이유로 배우를 인터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과의 기싸움에선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하니까. 설경구가 그랬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친절이 몸에 밴 ‘애티튜드’를 구사하지만 설경구는 처음부터 달랐다. 툭툭 내뱉는 단답형 답변 스타일. 싫고 좋고를 떠나서 무서웠다는 게 맞다. 하지만 인터뷰 횟수가 늘어날수록 첫 느낌은 완전한 오독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어떤 코미디언보다 상황을 재미있게 전하고, 무슨 말에든 자연스럽게 욕이 따라붙었다. 그의 욕은 귀엽다. 말끝마다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씨발’ 등등의 욕이 따라붙는 건 그의 음성으로 직접 들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인터뷰가 웃었던 기억뿐이라면 세 번째 이후의 인터뷰에서 목격한 건 그가 굉장히 따뜻하고 정겨운 배우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하더라도, 최민식은 “그 사람, 그러면 안되는데요”라고 하는 데 반해, 설경구는 오히려 욕부터 튀어나오거나 직접적으로 상황을 언급한다. 가령 이런 투로. “문소리, 걔는 시집도 안 간 애가 비비꼬고 앉아있냐?” 그건 <박하사탕> 이후 <오아시스>까지 줄곧 지켜본 후배 배우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 표현이었다. 설경구에 대해 정리된 품평을 덧붙이자면, 그는 대중 앞에서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배우이다. 설경구를 비롯해 여러 배우들을 인터뷰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코멘트가 있다. 너무 외롭다는 것. 대중이 언제 등돌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지만, 반면 그것이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에 대해 전도연은, “외롭다는 건 배고프다, 춥다 같은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배우라기보다 어른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던 고두심, 윤여정, 주현 같은 배우들에 대한 인상도 깊다. 평생 <전원일기>의 큰며느리로 살면서 답답하고 힘들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던 고두심은, 무병 걸린 사람이 굿을 하지 않으면 안되듯, 배우 역시 연기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이혼 후 자신이 가장이 된 상황에서 연기에 대한 필연적 이유에 대해 절박하게 사고했다고 말했다. 그런 절실함이 빚어낸 감식의 결과들, 즉 연기하는 배우가 편하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불편하다는 얘기, “내가 연기해줄게”라는 거만한 태도의 배우에 대한 냉소는 환갑이 다된 나이에도 탁월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만의 에너지가 아닐까 싶었다.
- 백은하(자유기고가)

가장 각별한 느낌을 안겨준 인터뷰이는 안정환이다.경기 후에 짤막하게 소감을 밝히는 것을 제외하곤 정식 인터뷰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와의 인터뷰를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J리거 탐방 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접촉한 게 안정환이다. 당시 시미즈팀에서 뛰고 있던 그를 시즈오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별도로 구단 허락이 필요한 인터뷰였지만 안정환이 직접 해결한 상태였고, 특유의 말쑥한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터라 분위기도 좋았다. 문제는 쉽지 않은 인터뷰 팩트였다. 안정환이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진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그후 안정환이 털어놓은 얘기는 어느 매체에서도 볼 수 없는 진솔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부담스런 존재다, 자신은 엄마 손에서 성장한 기억이 없고 줄곧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축구 선수로 얼굴이 알려지면서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 나름의 고생이 알려졌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정환의 엄마라는 명목으로 벌려놓은 일들에 대한 뒷감당을 해야 했다는 것까지 불우한 성장기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제왕의 이미지와 도저히 매치시킬 수 없는 얘기들도 이어졌다. 어렸을 때 굿 구경을 다닌 이유가 굿이 끝난 뒤 제물을 챙겨 할머니에게 전해주려고 했다는 것부터, 처음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오렌지라는 걸 처음 먹었다는 얘기, 훈련캠프에서 나올 때는 할머니에게 챙겨드리려고 오렌지를 싸왔다는 얘기, 지금은 아이가 생겼지만, 엄마 성을 따른 자신의 호적을 설명하는 게 싫어 아이를 갖지 않으려 했다는 얘기까지. 덧붙여 일면식도 없는 아버지를 왜 언론에서 궁금해하는지,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 왜 유독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큰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스포츠 전문 인터뷰어로서 이전부터 안정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곤 했지만, 그런 개인사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컸다. 안정환은 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무뚝뚝하다는 이유로 건방지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안정환은 인생에 대한 생각도 많고 똑똑한 선수다. 언론의 무차별 자극이 그를 자꾸 웅크리게 만드는 것 같아 아직까지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또 다른 인상적인 인터뷰이를 꼽자면 허재다. 가장 최근에 ‘취중 토크’를 했던 허재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친화력이 대단했다. 술자리에서의 그는 자연인 그 자체였다. 술 실력은 그렇다 치고 거리끼지 않고 얘기하는 대목에서 인간적인 매력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픈 과거 얘기도 나왔는데, 하도 술과 관련된 사고가 많아서 잠깐 금주를 했었는데, 오히려 운동이 되질 않아서 다시 마셨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 허재는 농구계가 알아주는 주당이다. 하지만 그런 허재가 술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온 경험이 있었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상대와 광주에서 술을 마시다, 이대로 마시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몰래 가방을 들고 부산으로 도망쳤다. 그 상대가 바로 삼성 라이온스의 투수 코치 선동렬이다. 허재의 전언으론 술집을 빠져나왔던 새벽까지 그는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선동렬에게 이 에피소드를 전했더니,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 막강 상대? 바로 삼성 라이온스의 김응룡 감독이다.
- 이영미(<일요신문> 기자)

김규항이 그랬다. 한국 사회에서 인터뷰라는 건 인터뷰이의 프로필만 확인한 뒤 한두 시간 만나면 조금 안 것 같은 느낌을 받는 행위라고. 그런 방식의 인터뷰, 즉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면, 내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생각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인터뷰이의 내면을 파악한다는 건 내겐 아직까지 건방진 것 같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요령부득의 영역이다. 난 개인적으로 가장 만나고 싶은 대상을 인터뷰이로 정한다. 그리고 적어도 네 번 이상 만나야 인터뷰이의 생각과 호흡이 온전하게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스타일 문제겠지만. 그런 것들을 전제로, 특별한 인터뷰이를 꼽자면 단연 강준만 교수다. 굉장히 힘든 섭외과정을 거쳐 성사시킨 데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더 간절했던 인터뷰이. 그를 섭외하기 위해 전북대에도 여러 번 찾아갔고, 부산에서 강연한다고 하면 쫓아내려가곤 했다. 그러나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겨우 허락을 받았음에도 다음날 숙소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다시 설득,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전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을 만나고 기록하는 즐거움도 있다는 걸 뼈아프게 확인한 경우였다. 서너 차례 만나면서 애정까지 생긴 인터뷰이는 홍세화, 진중권, 김규항이다. 인터뷰어로서 가장 공부가 됐던 대상들은 성공회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김동춘, 조희연 등의 교수들이었다. 그들과의 인터뷰에선 사회적 현안에 대한 사유의 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 김규항은 답변에 산문이나 시적인 표현이 많아 듣는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많다. 김어준, 신해철의 경우는 천하가 다 아는 ‘말발’들이어서 듣기만 해도 즐거운 인터뷰이들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만났던 손석희가 기억에 남는다. 몇 년 동안 섭외해서 최근에 만나게 된 그는 절제와 균형감각이 대단히 뛰어나다고 느꼈다.
그 정도 포지션이라면 권위적인 이미지가 약간이라도 엿보일 만한데 그런 느낌도 전혀 없었고. 하지만 가슴속엔 뜨거운 불덩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단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경우 편파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지승호(프리랜서 인터뷰어)

세상엔 우문현답이며 기문진답이며 동문서답들이 가득하지만, 인터뷰가 단지 질문과 대답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당대의 인사라고들 숭상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주 기절했던 건 그들 대답이 드러내는 그 하릴없고도 따분한 머리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명사’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들이 버는 돈은 과연 정당한가? 마누 디방고의 “나는 아프리카 대륙과 모차르트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라는 답변에 충만해하다가, “우리 음악하는 사람들도 이젠 먹고 살 만해졌죠”라는 대답을 들으면 그자뿐만 아니라 그 병신 같은 소리를 들은 나도 함께 죽여 소금에 절이고 싶어진다. 보통 한국의 인터뷰이들의 대답이 아주 상식적이고도 맥없으면서도 일목요연하다는 건 날 극심한 열패감에 빠뜨렸다. 그들은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해체할 재능이 없는 건가? 대답에 대한 국민적 유전자 자체가 촌스러운 건가? 그런 따위의 대답을 재료로 만들 요리가 무엇이란 말인가? 필립 스탁을 만났을 때, 나는 상대에게 관심이 없거나, 궁금한 것이 없을 때조차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내 직업의 더러운 점이 기뻤다. “내 자신, 내 인생의 그림을 그려보면 그건 바로 유령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존재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모든 것에 만족할 만큼 훌륭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 아인슈타인이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나 역시 아인슈타인이 아닙니다.” “난 항상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삶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난 항상 창가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그리고 내 머리에 총을 갖다댄 기분으로 매순간 살아갑니다.” 그는 그렇게 질문과 대답 사이의 허장성세에 다리를 놓았다.
- 이충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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